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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인물] 최현배(崔鉉培:1894-1970)
관리자 2019-11-14 10: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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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외솔로써, 울산 출생이다. 

경성고보 재학 중 1910년부터 3년간 주시경(周時經)의 조선어강습원에서 한글과 문법을 배웠다. 1919년 일본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원자격증을 받았으나 관공립고등보통학교 교원을 사퇴하고 고향에서 휴양하면서 조선인 상권(商權) 확보를 위하여 공동상회(共同商會)를 설립하였다. 

1920년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가 1922년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연구과에 다시 수학, 이어서 교토[京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1925년 동대학원에서 1년간 수업하였다. 

1926년 연희전문 교수가 되고 1938년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사건으로 강제 사직하였다.
최현배는 이극로를 도와 대종교정신을 토대로 한글연구와 함께 조선어학회를 활성화시킨 인물이다. 그는 우리 민족적 이상을 단군신화에 있음을 강조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만이 가진 이상이라고 내세웠다. 

나아가 최현배는 인류구제의 대이상을 품고 이 세상에 내려온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며, 예술을 좋아하며, 지상유일신을 숭배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면서 대종교의 의미를 대종교신앙이 삼신일체 하느님을 신앙하는 종교라고 천명했다.
특히 최현배는, 권덕규(權悳奎)의 고증(考證)을 들어 정음(正音) 이전에도 분명히 글자가 존재하여 단조(檀祖)로부터 부여, 부여에서 고구려로 또 백제․발해로까지 전승되었으며, 남방에서는 신라에서 고려까지 내려 왔음을 단정하기도 했다. 

또한 최현배는 한글완성의 민족적․인류적 의미를 부여함에 있어서도 대종교 믿음의 대상, 즉 우리 민족신앙의 하느님이 부여한 신명(神命)임과 함께 대종교의 교의(敎義)인 홍익인간의 정신임을 분명히 밝힌 인물이다.
최현배는 조선어학회 창립에 참여하면서,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 준비위원이 되었으며,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등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42년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8·15광복 때까지 3년간 복역하였다. 

8·15광복 후 미군정청 편수국장에 취임하여 교과서 행정을 담당, 그 기틀을 잡았으며 이어 한글학회 상무이사·이사장 등을 지냈다. 

1951년 다시 문교부 편수국장이 되었다가 1954년 연세대학교로 돌아가 교수·문과대학장·부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우리말본》《한글갈》《글자의 혁명》《나라 사랑의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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