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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칼럼] 국학의 개념 - 머리말 / 김동환(본 연구소 연구원)
관리자 2019-11-14 16: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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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세계화라는 급격한 변화 풍조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를 바꾸어 놓았고 또 끝없는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를 넘어선 지역공동체로의 지향은, 경제적 목적만이 아니라 정치적 일체감을 추구하기도 한다. 더욱이 한편에서는 문화적 패권주의를 통한 영향력 확산이 새로운 문제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근자에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역사문제가 많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찬탈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독도영유권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격동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이나 학문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 문제는, 각 집단(국가나 민족)에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단일민족?유구한 역사?반만 년 문화민족 등의 피상적인 구호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도, 우리는 누구며,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 왔고, 또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인 동시에, 문화를 무기로 한 세계화 시대의 생존조건을 갖추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나 학문과 관련한 주체적 인프라는 척박하기 그지없다. 특히 국학과 연관된 연구줄기는 끊어진 지 오래다. 외래학이 국학인 양 행세한 지 오래고, 우리 국학의 본모습을 알고 싶다는 외국학자들의 성화에도 꿀 먹은 벙어리다. 하기야 수입된 학문사조나 방법론의 범람 속에서 우리다운 국학을 만들어 내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외래학으로 포장된 국학을 국학으로 내 세우기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국학은 그 집단의 학문적 정체성을 대신한다. 그것은 그 집단의 성정(性情)을 만들어 내는 감성학(感性學)인 동시에, 상대적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이성학(理性學)이기도 하다. 국학을 발견치 못하는 집단은 건강한 국가정체성을 가꿀 수 없으며 국학을 내세우지 못하는 집단은 창조적 세계학을 지향할 수 없다. 오히려 국가적 노예근성이 싹틀 수 있고, 남의 집단에 의해 희롱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다.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꿈꾸는 중국의 고구려사 말살의 획책도 우리에 대한 희롱으로써 국학의 부재와 무관치 않다. 과거 한?중관계사를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소중화주의?사대주의에 대한 가치명제가 아직도 우리 역사계의 멍에로 남아 있음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고구려사 찬탈 문제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영토주권침해 문제와 더불어 우리 국학(國學) 연구에 정체성을 동반한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더욱이 이것은 우리 국학(國學)의 시원(始原)이라 할 고조선의 후예였던 고구려사를 중국사화함으로써,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과 국학의 뿌리를 통시적으로 흔들어 놓고 있다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고구려사 말살 의도는 중국의 중화주의적 비전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과거?현재?미래의 안목이 숨겨진 의도적 작업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즉 한국의 과거는 그들의 속국?중화문화의 시혜자요, 한국의 현재는 한반도에 묶여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한 불완전의 집단이며, 한국의 미래 또한 동북아의 문화적 주도권을 장악하는 자의 전리품이 될 수 있다는 문화제국주의적 망상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일제가 우리 역사의 왜곡을 통해 우리 민족을 영구 지배하려 했던 일본제국주의적 정서와 대동소이하다는데 더욱 씁쓸함이 크다. 더욱이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중국이나 일본 외에도 수많은 집단들에 의한 농락당할 가능성을 우리는 망각해서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세계화라는 논리 속에 숨어 있는 냉엄한 법칙이다. 

  한편 주변 국가들의 한국사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혹시 그들만의 욕심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은 없었는가에 대해 냉철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일찍이 우리 국학의 철학적 줄기가 될 수 있는 신교적(神敎的 혹은 道家的) 역사의 전통은 우리 위정자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인멸되었으며, 일제 식민지사관의 논리적 도구로 원용된 실증주의사학의 명분 앞에 우리 상고사의 대부분이 민족사에서 소외된 것이다. 한국사학계에서 신주처럼 떠받드는 정사체(正史體)가 왕의 재위 연?월?일, 권력자의 행적을 기록해서 전한 사료에 불과하고, 거기엔 ‘탐구로서의 역사'는 없었다는 지적도, 우리 민족과 더불어 호흡해 온 정신이 결여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해방 후 한국사학이 실증적인 면에서의 업적은 두드러지지만 사론적(史論的) 측면에서의 연구가 부족했다는 평가도 사관(史觀)의 부재(不在) 혹은 ‘탐구로서의 역사'가 없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실증주의사학은 하나의 학풍을 이룬 다기 보다는 역사학 연구의 기초조건으로서의 그 본래의 기능에 한정되어 가고 있음을 상기해 보자. 실증의 과정을 겪지 않는 역사연구가 있을 수 없지만, 실증만으로 끝나는 역사연구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역사?문화적 난국에 당면하여, 우리 역사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잘못을 성찰하면서, 우리는 국학이라는 의미를 또 다시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국학이라는 것은 우리 민족 정체성의 논리요 외국에 대한 국력이론이며, 원심론(세계화론)을 위한 구심론(민족이론)임을 먼저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위기 때마다 정신적 단합요소로 작용한 국학은 우리의 역사를 역사답게 만들어 온 문화사의 정수이며 민족을 민족답게 지켜 준 정신사 고갱이다. 특히 일제 하 단군신앙의 부활과 더불어 나타난 국학의 일대 발전은 국학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획기적 변화를 몰고 왔다. 

  우리는 수천 년을 함께 공유해 온 민족사를 가지고 있으며, 민족적 단일성을 지구상 어느 민족보다도 자부해 온 집단이다. 또한 인류의 과학적 자산으로 평가되는 한글창제를 통해 훌륭한 언어사회로서의 자긍심을 영위해 왔고, 세계 어느 가치와도 호환(互換)되는 홍익인간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를 만들고 실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우리 민족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국가정체적(國家正體的) 학문으로 체계화시키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아직도 정착되지 않은 우리 국학에 대한 의미를, 그 개념과 범위 그리고 실체와 속성 파악을 통해 새롭게 규정해 보고, 근대 국학 성립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준 홍암 나 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자 했다. 다만 국학의 역사적 전개 부분이 고찰되어야 하겠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추후의 논고를 계획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접근이 쉽지 않은 작업임을 고백해 둔다. 더욱이 국학의 문외한인 필자의 우견으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국학연구가 풍요로운 다른 연구 영역과는 달리 척박하고 고독한 토양 위에서 연명(延命)하고 있는 미개척의 학문임을 감안한다면, 필자의 무지한 용기가 오히려 학문의 척후병 노릇으로는 적절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첨언할 것은 국학에 대한 이러한 논구 의욕이 필자의 국수적 심경의 발로가 아님을 전제해 두고자 한다. 오히려 지금껏 외면해 온 우리의 학문적 가치를, 우리의 눈으로 기준을 세워 보자는 소박한 욕심임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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