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국학인물] 김교헌(金敎獻:1868-1923)
관리자 2019-11-14 09:24:07
첨부파일

호는 무원(茂園)이며 대종교명은 김헌(金獻)이다. 

188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기거주(起居注)가 되었고,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를 역임한 후, 1892년 예조참의가 되었다. 

대사성을 거쳐, 1903년 문헌비고 찬집위원, 1909년에는 규장각 부제학으로 있다가, 이듬해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다. 
또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대중계몽운동에 힘썼으며 ‘문헌비고찬집위원’과 ‘규장각부제학’ 그리고 ‘국조보감감인위원’ 등을 역임했다. 

비밀단체인 신민회(新民會)에도 관여하였으며, 박은식·장지연·유근 등과 더불어 그의 제자 최남선이 주도한 조선광문회 활동을 이끌기도 했다.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이듬해 영계(靈戒)를 받고, 총본사(總本司)의 부전리(副典理) ·경리부장(經理部長)을 거쳐 도사교위원(都司敎委員), 남도본사 전리(南道本司典理), 총본사 전강(典講) 등을 역임하고, 

1916년 교주 나철(羅喆)의 교통(敎統)을 승계하여 제2대 교주가 되었다. 


이듬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총본사를 만주 허룽현[和龍縣]으로 옮기고, 다시 북만주 닝안현[寧安縣]으로 옮긴 뒤, 시베리아 ·몽골 ·중국 각지에 교당(敎堂)을 세우고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3 ·1운동 이후 독립군으로 활약하는 교도들을 지도하다가 일본군의 대대적인 독립군 공격작전으로 많은 교도가 학살당하자 비분과 과로로 병을 얻어, 유서를 통해 교통(敎統)을 윤세복(尹世復)에게 물려주었다.


한편 유근·박은식과 함께《단조사고》편찬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신단민사》《신단실기》《배달족역사》 등의 저술을 통하여 역사의식의 고취와 독립정신의 고양에 앞장섰다. 

특히 《배달족역사》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학생용 교과서로 사용되었으며, 

그의 역사서술은 근대민족주의사학 성립에도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전글 나철(羅喆:1863-1916)
다음글 서일(徐一:1881-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