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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강좌

삼일신고 강좌(6)- 행함과 수행
관리자 2019-11-14 10: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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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에서의 행함과 수행

 

 

머리말

 

삼일신고의 마지막 장인 여덟 번째 장은 행함 장으로 허망을 좇지 말고 참에 돌이키라 가르친다. 이는 착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놀지 말고 공부하여 밝은이가 되라고 함이다. 수행은 사람마다 다 다른 길을 가야 하지만 여기서는 처음 시작하는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정리한다. 

 

 

제 8 장  행함

 

가. 구성

행함 장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뭇사람은 착함, 악함, 맑음, 흐림, 후함, 박함을 서로 섞어서 지경과 길을 따라 제 맘대로 달리다가 태어남, 자람, 늙음, 병듦, 죽음의 괴로움에 빠진다. 

밝은이는 감정을 그치고 숨쉼을 고루 하고 감각을 금하며 한 뜻으로 되어가게 행하여 허망을 돌이켜 참에 나아가 큰 하느님 기틀을 여니 성품에 통하고 공적을 완수함이 이것이다. 

(衆 善惡淸濁厚薄 相雜 從境途 任走 墮生長肖病歿苦 哲 止感調息禁觸 一意化行 返妄卽眞 發大神機 性通功完 是 중 선악청탁후박 상잡 종경도 임주 타생장소병몰고 철 지감조식금촉 일의화행 반망즉진 발대신기 성통공완 시)

 

이 장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뭇사람과 밝은이의 행함을 묘사한다. 뭇사람이 허망에 미혹되어 그 결과로 다섯 괴로움에 빠지는 모습과 밝은이가 수행하고 참에 돌이켜 한얼님 기틀을 여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나. 주석

‘착함, 악함, 맑음, 흐림, 후함, 박함을 서로 섞다 (善惡淸濁厚薄 相雜)’ 는 뭇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한번 잘하고 한번 못하고 한번 얻고 한번 잃고 한번 맑고 한번 흐리고 한번 후하고 한번 박하고 .. 하는 모습이다. 수행 없이 일상생활을 사는 것은 이렇게 끊임없이 잘함과 못함이 뒤섞인 허망을 쫓아다니는 것이다. ‘지경과 길을 따라 제 맘대로 달리다가 (從境途 任走)’ 는 숨 쉬면서 보고 느끼고 듣고 느끼고 만지고 느끼고 먹고 느끼고 .. 등을 하면서 혹은 감각적 쾌락을 탐닉하거나 혹은 사랑하거나 혹은 기뻐하거나 혹은 성내거나 혹은 탐욕을 부리거나 하며 제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이러한 길과 지경에도 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허망과 뒤섞여 있어서 이 길과 지경으로 달리면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달리는 것과 같아서 다섯 가지의 고통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태어남, 자람, 늙음, 병, 죽음 등의 다섯 괴로움 안에 태어남과 죽음이 포함되어 있어서 생물들이 윤회함을 함축한다. 태어남과 자람은 한편으로는 즐거운 일이지만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태어나며 자라는 동안에도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갖가지 고통을 받고 또한 나중에 결국은 늙음으로 향하게 되어 있어서 그것들도 괴로움의 일부가 된다. 다님, 날음, 변태함, 헤엄침, 심음 등의 다섯 생물들이 받는 고통도 다섯이며 상생상극 하는 오행도 다섯의 수와 관계되어 있다. 고통의 고(苦)는 ‘풀이 오래됨’이니 시들어가는 고생스런 상태이다. 참전계경에도 제 2 장 경신에서 ‘사람이 하느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하느님도 사람에 응답하지 않으니 풀과 나무들이 비, 이슬, 서리, 눈을 받지 못함과 같다’ 고 하여 사람을 초목에 비유하고 있다. 다섯 가지 고통의 과정을 보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요즈음에는 다섯 고통 중에서 늙음과 병듦의 기간이 길다. 의약기술이 발달하여 사람의 수명은 길어지고 일하는 기간은 동일하니 시간이 많아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사람들이 삼일신고를 외우고 수행 공부를 하면 서로 돕고 할일도 생길 것이다.

뭇과 밝은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 즉 지경과 길과 참과 허망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뭇사람들은 길과 지경에 휘둘리고 온갖 허망이 섞여있는 사람이고 밝은이는 참에 돌이켜 허망의 주인이 되고 길과 지경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뭇사람과 밝은이가 가진 것은 동일하나 선택의 차이가 있으니 그 둘의 차이는 백지장이라 할 수 있다. 뭇사람도 마음 한번 잘 먹고 참에 돌이키면 밝은이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지감(止感: 감정을 그침), 조식(調息: 숨쉼을 고르게 함), 금촉(禁觸: 감각을 금함)은 어떤 수행을 하든지 정신통일하여 수행할 때는 모두 병행된다. 예를 들면 경을 읽는 금촉법에서도 고요히 앉아서 정성들여 외울 때 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숨이 차게 운동을 하면서 외우지는 않으므로 숨을 고르게 쉬게 된다. 정좌하고 무념무상의 지감법을 행할 때도 조식과 금촉은 기본적으로 진행되며 단전으로 호흡하는 조식법을 수행할 때도 지감과 금촉의 상태에 있다. 윤세복이 지은 <삼법회통>이나 이용태의 <수진비록> 등에 정리되어 있는 삼법(三法)인 지감법이나 조식법, 금촉법의 각각의 수행법은 하나를 특히 두드러지게 수행하는 수행의 방법들의 이름으로 지감, 조식, 금촉과는 다르다. 

‘한 뜻(一意)’은 정신통일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뭔가 한 가지를 하겠다는 일념에서 나온다. 참전계경 제 13 사 의식(意植)에 보면 ‘하늘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면 먼저 뜻의 밭을 고르게 갈고 운용해야 된다.’고 하여 뜻을 잘 가지라고 강조한다. 이 뜻을 강하고 바르게 가짐은 수행에서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많은 스승들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제자의 뜻의 확고함을 시험하기도 하고 뜻의 밭을 고르게 단련시키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몇 년씩 허드레 일을 시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경전 공부를 충분히 시키기도 한다. 한 뜻을 가지면서 허망을 돌이켜 참에 나아가면 그 뜻은 정성스럽게 되어 성의(誠意)가 된다. 참전계경 제 26 사 재목(在目)에 ‘성의가 눈에 있은즉 가까운 사물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하고 먼 사물은 그림 같다’ 와 35 사 방운(放運)에 ‘성의를 냄에 쉬지 않은즉 깜깜한 밤에도 밝은 달이 생기며’ 와 같이 사람이 성의를 가짐을 쉬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지 이룰 수 있다.

화(化)는 ‘되어가다’의 뜻으로 삼신의 삼화 작용인 만들어 되게 함과 가르쳐 되게 함, 다스려 되게 함 등에도 쓰인다. 수행자는 수행할 때는 되어가게 공부하고 일상생활에서는 되어가는 사람 또는 된 사람으로 행한다. 그러므로 ‘화행(化行)’은 되어가는 수행 공부와 되어가는 생활을 다 포함하여 ‘되어가게 행함’의 뜻이 된다. 

반망(返妄) 즉 ‘허망에서 돌이킴’은 자기의 죄와 과오를 먼저 뉘우치고 앞으로는 허망을 따르지 않음이다. 사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지 말라는 것을 먼저 안 해야 된다. 개과천선한 이가 악한 일을 다시 안 해야지 착한 일을 백 번 하고 악한 일을 한 번 하면 그것을 만회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예전의 습관대로 악한 일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병든 사람이 보약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끊어야 되는 술이나 담배를 계속 하면 약도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참전계경도 앙화와 복의 순서대로 하여 악을 먼저 저지르지 말고 복을 짓는 일을 하라고 가르친다. 즉(卽)에는 ‘곧’의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나아간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즉진(卽眞)은 세 참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발대신기(發大神機)는 밝은이가 정기를 보전하고 명을 알고 성품에 통하여 하느님의 큰 기틀을 냄이다. 성품에 통한 밝은이가 보전된 정기를 가진 몸으로 주어진 명대로 공적을 완수함이니 이것이 성통공완(性通功完)이다. 참전계경 제 296 사 주수(株守)에도 ‘하늘 기틀이 스스로 있다.’ 라는 뜻의 천기자재(天機自在)가 보인다. 천(天)은 보이지 않는 하늘(무형지천(無形之天)인 하느님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하느님 기틀은 우리 안에 스스로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돌아보고 내기만 하면 된다.

 

 

삼법 수행

 

지감법, 조식법, 금촉법 등의 삼법 수행은 <삼법회통>에 정의되고 설명되어 있다. 우리가 눈을 감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지감법의 출발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하여 기도할 때 자기도 모르게 숨죽여 깊이 호흡하는 것은 조식법의 기본이다. 경전을 소리 내어 읽거나 외움은 금촉법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부터 시작하면 누구라도 삼법 수행을 할 수 있으며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 

수행을 하면, 하는 도중에 마음이 바르고 깨끗하게 됨을 경험한다. 비록 기간이 짧다거나 공부가 부족하여 공과를 얻지 못하여도 아니함보다 백배 천배 낫다. 참전계경 제 125 사 경타에도 ‘가다가 다시 돌아오고 깼다가 다시 잔다고 해도 아니 가고 아니 깸보다 낫다’ 고 하였다. 수행하여 표시 나는 공과를 얻는 경지까지 가지 못한다고 해도 수행한 만큼 자기에게 덕이 된다. 한 시간의 수행을 하면 한 시간만큼의 응답이 돌아오고 1 분의 수행을 하면 1 분에 해당되는 만큼의 응답이 돌아온다. 1 분 동안이라도 마음을 비우고자 하면 그 만큼 자기의 마음이 순화된다. 한 구절의 경전을 읽으면 비록 그 구절을 잠시 잊는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상황이 그 구절에 맞는 때가 되면 다시 생각나게 된다. 오묘한 진리의 말씀을 들어두면 일시적인 과오로 인하여 큰 시련을 맞을 때에 그 말씀이 빛이 되어 자기를 인도할 것이다. 경전의 말씀을 듣고 익힌 바가 있으면 비록 지옥에 떨어져 있다 해도 그 말씀을 떠올리며 뉘우치고 참에 돌이킬 수 있다. 이것이 진리를 배워둔 것의 효과이고 수행의 힘이다.

예전에는 ‘재주와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도를 전하지 말라 (非人勿傳 비인물전)’ 라는 비공개의 원칙 아래 수행자가 제자를 택하여 수행법을 전수하는 방법으로 명맥을 이어온 경우도 있었다. 조식법이나 금촉법, 지감법 등을 잘못 수행하면 오히려 화가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누구에게나 공부를 가르치는 것처럼 수행도 누구에게나 다 가르쳐야 한다. 수행하다가 간혹 잘못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학교에서 모든 사람이 공부를 배우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수행을 배운다면 개인과 사회가 발전할 것이다. 

 

가. 삼법 수행 준비

처음 수행하고자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영화 필름 돌아가듯이 머릿속에 한없는 생각의 파노라마가 지나가 잠시 후에는 그 생각에 묻혀 자기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도 모를 정도의 망아지경에 빠져버린다. 이것이 바로 과거의 일이 길 앞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어 마치 길이 없는 가시덤불 숲속 앞에 놓인 것처럼 된 상황이다. 열심히 수행하는 시일이 지나 잡념의 숲이 걷히면 어느 정도 길이 트인다. 그러나 이후에도 마음은 옛 기억들에 의한 슬픔이나 노여움 등의 여섯 가지 감정으로 괴롭힘을 당한다. 또 시일이 지나 이러한 상태가 구름 걷히듯 말끔하게 걷힌다. 그 후에도 수행 중에 마음에서 비롯되는 각종 유혹이 고개를 든다. 

우리는 이러한 수행의 방해물들을 줄이고 그것을 해쳐나가기 위해서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첫 번째의 준비 사항은 경전의 말씀을 잘 지키고 착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착한 생활만이 수행할 때 생기는 잡념과 사특한 생각의 뿌리를 적게 만든다. 다음은 삼일신고와 참전계경 등의 경전을 공부하여 수행하고자 하는 확신과 확고한 뜻을 가지는 것이다. 확고한 뜻이 없으면 수행의 길을 가다가도 한편으로 의심이 들고 한편으로 지루한 마음이 드는 때에 이겨내지 못한다. 경전을 이해하고 통달한다면 바로 수행의 길을 아는 것이므로 수행 과정에서 옆길로 빠지거나 중도에서 그만 두는 확률이 작아진다. 

수행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선각자의 말을 많이 들어두는 것도 필요하다. 수행자에게는 논리적인 확신과 함께 수행 과정에 대한 경험자의 말이 필요하다. 수행자가 걷는 길은 간단하다면 간단하다고 하지만 멀고도 험해서 혼자 갈 때는 자칫 유혹에 빠질 수도 있고 길을 잘 못 들 수도 있어서 위험하다. 그러기 때문에 선각자의 인도가 있으면 시행착오가 줄어든다.  

스승 없이 수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뜻을 확고하게 가지면서 공부하면 스승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의지대로 가는 것이다. 자기의 몸이 남이나 스승의 몸과 다르듯이 자신의 타고난 정신은 남과 다르므로 수행의 자세한 방법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남의 방식이나 격식을 따르는 것은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아서 진실한 자신의 창조력을 제약하고 자기의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스승은 자기가 가는 길을 어느 정도까지만 인도할 뿐이고 참 스승은 자기 자신의 안에 있는 성품이다. 참전계경의 181 사 조기(造器)에 보면 ‘조기란 하늘이 사람그릇을 만듦이다. 모든 사람을 한 형상으로 만들고 모든 성품을 한 품격으로 만들지만 단 여덟 다름과 아홉 특수함을 만든다. 구제의 바탕이 서로 같지 않아서 반드시 돌리고 녹이고 갈고 닦아 이루어야 한다.’ 와 같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 있으므로 각자의 길은 각자 가야한다.

수행에서 욕심을 내면 수행을 그르쳐 중도에서 중지해야 되고 심하면 몸과 마음을 다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욕심을 버리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낮은 자라고 생각해야 된다. 세간에서 시간을 내어 생활 삼법을 행하는 사람도 바른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여 정기를 흩어지게 하지 않는다. 화내는 마음이나 탐욕스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숨이 가빠져 고르지 못하여 조식이 안 된다. 마음은 심란하고 정신은 산란되어 지감도 안 된다. 경을 외워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금촉도 할 수 없다. 

 

나. 수행 시작

처음 수행은 일정한 기간을 정하고 하루의 일과를 정하여 그 일정을 어김없이 지키면서 하는 기도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3․7 일 즉 21 일 동안 일정한 의식 절차에 의해 독경을 위주로 하는 3․7 일 기도는 아주 좋은 기도이다. 격식이란 혼자 있을 때나 혼자서 하는 일에는 필요 없는 것이지만 초발심자는 수행에 대해 생소하여 명상에 전념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속에서 뿌리박힌 허망을 잊기 위해 의식을 따름이 좋다. 

기도는 21 일 이상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초발심자에게는 21 일 이상 하는 것을 권해야 한다. 조상들은 21 일 기도의 효과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서 이 기도를 많이 하여 왔다. 사람은 21 일 이상 새로운 사상을 그 뇌리에 주입시켜야만 기존의 관념이 새 것으로 대체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 사람을 정신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서는 21 일 이상 훈련 또는 주입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공동생활을 할 때는 격하는 일이 없이 늘 바른마음으로 행동하고 근신한다. 단체의 수칙을 잘 지키며,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신의가 있어야 하며, 자기가 가장 낮은 자라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이중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 진실해야 하며, 헛되이 재물을 낭비하지 않고 절약해야 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하며, 남들에게 방해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기도의 일과에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시간, 절을 하는 시간, 경전을 소리내어 읽는 시간, 짧은 시간 동안의 명상 등이 포함된다. 기도 중에 자기가 금하는 것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아침 금식 또는 며칠간의 단식, 찬물로 목욕하기, 또는 채식, 금주와 금연 등을 기도와 병행하는 것이다. 

절은 마음으로는 자기를 낮추어 상대에게 몸을 바치는 일이다. 육체적으로는 좋은 운동의 하나이니 기도 기간 중에 절을 많이 하는 수행도 좋은 수행이다. 절하는 수행에서는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호흡에 잘 맞춰서 하고 장기간 너무 많은 절은 삼가한다. 일정 기간 음식을 먹지 않는 단식은 정신을 맑아지게 하고 육체적으로는 몸 안의 노폐물을 청소해주며 병마를 물리친다. 주의할 점은 단식은 상당한 경험과 지식이 있어야 하니 미경험자는 단식에 대한 책을 서너 권 읽은 후에 시도하거나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적인 사고를 당하기 쉽다. 

수행 중에 잡념이나 번뇌가 많아질 경우에는 ‘하느님이시여’라든가 ‘삼신’, ‘한배검이시여’ 등을 부르면서 물리친다. 그래도 잡념이 물러가지 않으면서 계속 마음이 산란하면 ‘자기의 과오를 용서해달라’ 고 하느님께 빈다. 

 

다 정좌

삼법수행 공부에는 정좌가 가장 좋은 자세이다. 정좌를 하면 움직이지 않고 오래 앉아서 정신집중을 할 수가 있고 몸속의 기운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가나 불가를 막론하고 수행자는 대부분 정좌의 자세를 취하고 앉아 있다. 정좌의 모양은 절의 대웅전에 앉아 있는 부처 상이 취하는 결가부좌이다.

정좌는 앉아서 먼저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지에 올리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놓는다. 오른 손바닥이 왼손 엄지손가락을 감싸 태극 모양을 이루도록 하면 좋다고 하지만 손은 편할 대로 놓는다. 다음, 허리를 곧게 펴고 한번 앞으로 쭉 숙였다 놓아 골반과 허리의 구부러짐을 바로 잡아주고 허리를 약간 앞으로 숙인다. 너무 뒤에 무게 중심이 가서 꼬리뼈가 압박을 받으면 안 된다. 어깨에 힘을 주어 등뼈를 위로 쭉 뽑았다가 놓아 바르게 잡아준다. 가슴을 뒤로 쭉 폈다가 자연스럽게 놓는다. 턱을 앞으로 당겨 머리를 앞으로 숙였다가 뒤로 젖힌 후 바로 놓는다. 고개를 약간 숙여 코끝이 배꼽을 향하게 하고 눈은 반쯤 뜨고 코끝을 지나 전방 1 m 정도 앞을 응시한다. 눈은 감아도 되지만 잠이 오거나 잡념이 생기므로 보통은 반쯤 뜬다. 

허리를 처음부터 부자연스럽게 너무 꼿꼿하게 세우면 기운이 오히려 올라와 상기가 될 수 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처음엔 하나씩 배우는 것이 좋다. 허리도 자기가 앉아보아 느낌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세우면 된다. 의식적으로 허리를 세우면 기운이 위로 올라가 정좌를 풀 때 눈곱이 끼고 입이 텁텁해지며 기운이 솟구치고 입맛이 없어질 수도 있다. 오랜 동안 수련하면 허리는 점차 세워진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머리를 수그리면 잠이 쉽게 오고 정신이 멍한 상태인 혼침이 오기 쉽다. 혼침이 온다고 느껴질 때는 눈동자를 부릅뜨고 기지개를 켜고 나서 가볍게 엉덩이를 옮기면 사라진다. 심할 경우에는 자세를 풀고 쉬어야 한다.

처음엔 발이 저려 오래 앉아있지 못하므로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풀고 다른 자세로 앉되 허리를 세우면 된다. 답답하면 쉬었다가 다시 하여 차츰 시간을 늘여간다. 체형에 따라 또 나이에 따라 정좌의 자세를 취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러한 사람은 반가부좌를 하거나, 발을 개고 편하게 앉거나 의자에 앉아 수행한다. 고혈압이나 디스크 환자, 임신부 등은 호흡에 조심해야 되며 무릎에 관절염이 있는 사람은 정좌하지 말고 다른 자세를 취한다.

 

라. 금촉법

독경을 하는 금촉법은 흐르는 맑은 물에 손을 씻는 것처럼 마음을 씻는다. 손을 씻는 것은 금방이지만 마음의 습관은 고치기 어려워 오래 걸린다. 감각은 몸과 바깥세상과의 접촉이며 감각을 즐기는 것은 몸의 정기를 소모시킨다. 예를 들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저녁이 되어 눈을 감고 잘 때는 낮에 본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고 다음에 또 보고 싶어진다. 또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속 그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 이러한 것은 보는 것과 맛에 얽매여 정기를 소모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보거나 듣는 등의 감각은 사용하되 그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 하는데 금촉법으로 이를 다스린다. 

독경의 좋은 점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독경은 쉽고 재미가 있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경전을 날마다 읽기만 해도 되고 경전을 외우다시피 하면 경전을 읽거나 외우는 것이 재미있게 된다. 그리하여 경전은 오랜 친구와 같이 되고 경전의 글귀를 읽을 때는 오랫동안 사귄 친구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다음으로 독경은 정신을 모아주며 인생의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독경에 재미가 있으면 그 글을 외우는 데 정신이 집중되어 집중력이 길러진다. 경전의 좋은 글들은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정신에게 성품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므로 글의 내용이 자기 암시되어 욕심과 잡념이 없어지게 한다. 비록 독경하는 사람이 어린이이어서 그 뜻을 부분적으로 안다고 해도 어린이가 독경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다. 좋은 글을 외우는 동안 정신을 집중할 뿐 아니라 장성하여 어른이 되어서는 그 글이 떠올라서 자기도 모르게 이해가 된다. 현대의 교육은 이해력을 소중하게 여겨 좋은 글을 외우게 하는 데에는 무관심하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읽어오는 교과서들의 글귀들이 직접적으로 생활에 응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때에 경전을 익히고 수행의 기법을 배우면 일생의 좋은 밑천을 얻는 것이다.  

세 번째로 좋은 글을 읽는 소리는 우리 몸의 세포와 영혼을 진동시켜 활력을 준다. 우리 조상들은 소리가 우리 몸과 우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일찍부터 율려 사상을 믿었다. 사람의 몸은 어린이일 경우 80%가 물로 구성되어 있고 나이가 들수록 물의 양이 줄어 늙은이가 되면 60%로 내려간다. 이러한 물은 소리의 파동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에게 좋은 말을 했을 때와 나쁜 말을 했을 때 물의 반응이 달라진다. 경건한 기도 소리의 힘으로 호수의 물이 맑아졌다는 예도 있다. 물이 많은 인간의 몸도 소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물뿐만 아니라 다른 물질들도 소리의 파동에 의해 진동하며 소리를 전달하므로 소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경전을 외우거나 들으면 몸은 맑아지고 정기가 보전된다. 

 

마. 조식법

조식 장소는 조용하고 서늘한 곳이 좋다. 정신집중하여 기운을 모으면 열이 나므로 약간 추워도 느끼지 못하고 무더우면 오히려 잠이 온다. 조식을 시작하는 사람은 처음에 단전호흡하지 말고 그냥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는 연습을 한다. 눈은 감아도 되고 떠도 된다. 처음엔 한 번에 10 분 내지 15 분씩 앉다가 시간을 늘려 나중에는 하루에 1 시간씩 두 번 정도 앉는다. 차차 앉는 것이 익숙해져 몇 주일이 지나면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아 오래 앉아있을 수 있다. 정신집중하지 못하면 호흡 수련도 못하므로 공부하고자 하는 결심을 단단히 해서 정신집중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런 후 단전이 아닌 배꼽으로 숨쉬는 복식 호흡을 하되 호흡을 평소보다 짧게 끊어 한다. 복식호흡은 호흡량이 많기 때문에 호흡을 보통 때와 같이 하면 호흡이 부자연스러워지고 가빠진다. 숨을 일부러 길게 늘여 쉬는 것은 위험하므로 지도자 없이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장자에 보면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초보자는 정좌하여 호흡하기가 어려우므로 서서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는 자세나 누운 자세로 숨쉬기를 하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여러 단전호흡 수련 단체에서는 준비운동을 한 후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취하면서 호흡 수련하고 끝나면 정리 운동을 한다. 

보통 어른의 경우에는 한 번 숨을 쉴 때 갈비뼈가 주로 움직이고 횡경막은 1.5 cm 정도 움직여 약 500 ml의 공기를 들이쉬고 내쉰다. 이럴 경우 허파의 윗부분만 사용하므로 아래 깊은 부분에는 묵은 공기가 고여 있다. 허파의 공기가 완전히 바뀌지 않기 때문에 허파의 밑 부분에는 묵은 공기, 오염된 공기 그리고 병균도 남아 있게 된다. 조식을 제대로 하면 횡경막이 6~8 cm 움직여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공기 (보통 호흡량의 4~5 배라고도 함)를 호흡한다. 이러한 깊은 호흡은 허파의 공기를 완전히 새로운 공기로 바꾸어 우리 인체 곳곳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고 필요없는 이산화탄소를 뱉어내어 세포를 활성화시킨다. 

보통 사람들은 짧게 움직이던 횡경막이 경직되어 있거나 무기력해져 있다. 조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갑자기 호흡을 아랫배로 끌어내리면 배에 무리한 힘이 들어가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횡경막 부근의 근육에 무리가 온다. 그러므로 초보자는 날숨을 위주로 하되 배꼽을 중심으로 하는 복식호흡부터 시작한다.

혀는 입천장 위에 붙여도 되고 자연스럽게 아래에 놓아도 되지만 입은 반드시 꽉 다물고 코로 숨을 쉰다. 콧속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밖에 있다가 저녁에 귀가하면 따뜻한 물을 콧속에 넣어 입으로 빼기를 서너 번하여 콧속을 헹구어야 좋다. 뱃속이 안 좋을 때는 기운이 이미 위로 올라와서 숨이 뜨거워 콧물이 말라붙는 경우도 있다. 눈이 빨개진다든가 숨이 가쁘면 숨쉬기를 고쳐야 한다. 코가 막힌 사람은 수련하기 전에 코를 식염수(약국에서 판매)로 씻어 뚫어준다. 식염수가 없으면 깨끗한 물로 씻는다. 찬물로 코를 씻으면 재채기가 나기 쉬우므로 따뜻한 물을 사용한다. 식염수는 인체의 체액과 그 농도가 같아서 코에 넣어도 콧속의 피부에 이상이 없다. 그러나 체액과 농도가 다른 맹물이나 소금물은 많이 사용하면 콧속을 불게 하거나 손상시키므로 좋지 않다. 축농증이 있는 사람은 고쳐야 한다.

코는 중요한 기관이며 숨은 입이 아니라 코로 쉬어야 한다. 조상들은 말을 적게 하라고 하였다. 말을 많이 하는 가운데 그릇된 말을 할 수가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코로 숨쉬기 때문이다. 입으로 숨쉬면 기운이 빠져나가 기운을 배에 모을 수가 없다. 그리고 불순물을 코로 걸러낼 수가 없고 온도 조절기능을 사용하지 못한다. 입으로 숨쉬는 것이 버릇이 되면 콧구멍의 기능이 떨어져 감기 걸리기 쉽고 머리가 흐려진다. 

 

바. 지감법

지감법은 여섯 가지 감정을 그치고 마음의 작용을 멈춰 무념무상한 상태에서 성품을 깨우치고자 하는 것이다. 없음의 세계에서 성품에 통하고자 하는 지감법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근기가 있어야 한다. 근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금촉하여 자기의 감각의 길을 다스리고 조식하여 숨을 고르게 하며 성품이 있음을 철석같이 확신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에는 독경을 여러 해 하고 경전을 또 여러 해 배워 근기를 기른 후에야 앉아서 하는 지감법에 들어간다. 

감정을 끊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눈을 감고 현궁을 바라보기를 오래하는 것이다. 호흡은 복식호흡이 좋다. 처음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가지만 차츰 가라앉아 맑아지기 시작한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 하나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그것을 풀고자 하면서 념표(念標: 불교에서는 화두라고 한다)를 잡기도 한다. 자세는 정좌로 앉아서 한다. 또는 조식법을 행하면서 숨쉬기에 집중하며 숨쉬기를 관찰하기도 하고 쉼 쉬면서 성품이나 없음 또는 한울 등의 념표를 되뇌이며 정신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념표는 풀고자 하는 진리에 대한 목표를 가지는 것이다. 념표에 대한 의심은 생각해서 푸는 것이 아니고 궁금증만 가지면서 깨우침이 오기까지 정신집중하여 푼다. 그 의심을 거칠게 일으키면 안 되고 미세하게 하는데 미세하면 미세할수록 좋다. 의심이 있어도 그것에 매달려도 안 되고 의심이 없으면 다시 가볍게 일으킨다. 념표에 대한 의심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풀고자 하는 뜻이 커지고 정신집중도 잘된다. 한 가지 념표를 붙잡고 수행할 때에는 그것이 풀릴 때까지 오매불망 놓치면 안 된다.

념표를 오래 잡고 있으면 자기가 잡고 있는 념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정신은 깨어있어 공부를 계속한다. 그런데 공부하다가 보면 앉아 있기만 해도 즐거움이 솟아나서 앉아있음 자체를 즐기고 념표를 잊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태를 무기라고 하는데 수행자는 이 무기에 떨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수행 중에 잡념이 많을 때는 ‘하느님이시여’ 라고 부르면서 물리치며 온갖 환영이나 유혹이 와도 물리친다. 공부하는 마음이 급하거나 공부에 진전이 없어 답답할 경우에는 공부를 잊어버리고 쉬어야 한다. 한동안 쉬어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수행을 한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계속 수행하는 것은 욕심이다. 욕심이 앞서면 답답함이 날로 쌓이고 달로 쌓여 마음이 조급해지고 쉽사리 성내는 성질로 바뀌게 되며 심할 경우에는 발광하거나 요괴가 붙는다. 

열심히 공부하면 정좌 중에 깨닫는 사람도 있고 기도하면서 깨닫는 사람도 있다. 또는 경전을 읽다가, 수행하다가, 갈대밭을 지나가다가, 옆에서 말하는 것을 듣다가 깨닫기도 한다. 깨달음은 마음기운의 변화를 동반하면서 한 순간에 다른 세상을 보게 한다. 그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므로 깨달음으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경험을 한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마음기운이 크게 변하며 자신의 영혼이 한 단계 자라게 된다. 

 

사. 수행 점검

수행이 잘 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은 스승이 하지만 스스로도 점검이 가능하다. 우선, 수행을 시작한 후부터 나의 태도가 예전보다 더 나아지고 겸손해져야 한다. 공부해서 스스로 높아지면 헛공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음은 하느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게 되고 경전에 쓰여진 밝은이의 행동을 하게 된다.

수행을 하다가 무슨 변화가 있다거나 환영을 보면 스승이나 선각자에게 그것을 이야기해서 결재를 받는 것이 좋다. 어떤 이는 기도하다가 빛이 가득한 것을 보고 ‘이 세상은 빛이다’ 라고 하고 어떤 이는 향기가 가득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빛을 보지 못하고 그러한 향기를 맡지 못한다. 올바른 수행의 공과를 얻는 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따름이다. 이 밝은 세상이 이치대로 움직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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