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신고 강좌(3)- 삼일신고에서의의 교화신과 치화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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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2019-11-14 10:4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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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에서의 교화신과 치화신
머리말
삼일신고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장은 삼일신의 교화와 치화 작용에 대한 내용이다. 하느님이 계신 하늘집은 착함과 덕을 쌓은 사람이 이르는 곳이며 그 곳에서는 영원히 쾌락을 얻는 곳이다. 이러한 하늘집에 대한 가르침은 사람과 만물이 그곳에 이르도록 교화되게 하며 현세에서 착하게 살면서 고생하는 민초들에게는 큰 위로를 준다. 하느님의 치화 작용에 대한 묘사에서는 하느님의 무한하게 크신 능력을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다.
제 3 장 교화신
가. 구성 교화신 장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하늘은 하느님의 나라이다. 하늘집이 있어 온갖 착함으로써 섬돌을 하고 온갖 덕으로써 문을 삼는다. 한 하느님이 원만하게 계시며 뭇 신령과 모든 밝은이들이 모시고 있어 지극히 복되고 가장 빛나는 곳이니, 오직 성품에 통하고 공적을 이룬 이들만이 조회하고 영원한 쾌락을 얻는다. (天 神國 有天宮 階万善 門万德 一神攸居 羣靈諸哲護侍 大吉祥 大光明處 惟性通功完者 朝 永得快樂 천 신국 유천궁 계만선 문만덕 일신유거 군령제철호시 대길상 대광명처 유성통공완자 조 영득쾌락)
이 장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온갖 착함의 섬돌과 온갖 덕의 문으로 올라가는 하느님 나라 즉 하늘집에 대한 설명이다. 두 번째 부분은 하늘집의 교화신이 여러 밝은이와 함께 한길상과 한광명을 내는 모습이다. 세 번째 부분은 성품에 통하고 공적을 이룬 밝은이들만이 하느님을 뵙고 영원한 쾌락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나. 주석 하늘은 하느님의 본체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느님의 나라가 된다. 나라라는 의미는 어떠한 정부 기구에 의해 다스려지는 곳이다. 앞 장과 뒤 장에서 보듯이 모든 세계는 하늘에 포용되어 있고 하느님이 모든 세계를 다 주관하여 만물을 창조하고 교화하고 또한 다스리므로 하늘이나 온 우주는 하느님의 나라가 된다. 지구도 또한 하느님이 기운(氣)를 불어 넣어 만물이 번식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해누리 사자가 다스리는 누리의 일부이므로 하느님의 나라의 일부이며 우리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하느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는 하늘집이 된다. 온갖 착함으로 섬돌하며 온갖 덕으로 문을 삼음은 교화 과정을 의미한다.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성통공완하지 못하여 비록 하느님을 뵙지는 못해도 조금씩 착함을 쌓고 덕을 베풀어 하늘집으로 통하는 계단과 문들을 지나 하느님에게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다. 착함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면 하나의 덕의 문이 열린다. 그러한 계단과 문의 수가 무수히 많음은 꾸준히 행하고 깨달음을 무수히 해야 됨을 시사한다. 이러므로 참전계경 제 360 사 소(小)응답의
착함이 비록 작다고 안하고 악함이 비록 크지 않다고 지으면 이것 역시 응답의 작음이다. 가히 경계하지 않겠는가?
와같이 아무리 작은 착함이라도 행함이 행하지 않는 것보다 나으며 아무리 작은 악함도 짓지 않아서 하늘집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야 한다. 한 하느님(一神)을 단순히 하느님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이 하느님이 앞장의 조화신과는 다른 신, 즉 교화신임을 암시한다. 유(攸)는 ‘유유히’ 또는 자득(自得)과 같이 해석하여 유거(攸居)를 ‘여유롭고 원만하게 계시다’로 번역함이 더 옳다. 유(攸)를 곳으로 번역하면 뭇 신령과 밝은이들이 모시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는 장소가 된다. 대길상(大吉祥)과 대광명(大光明)에서의 대(大)는 앞장의 대덕, 대혜, 대력의 대와 같이 만물의 길상과 광명과는 다른 하느님의 큰 길상과 광명을 표현한 것이다. 길상과 광명은 착함과 덕에 의해 생기지만 또한 만물들을 비추어 착함을 행하고 덕을 쌓아 하늘집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거처하는 하늘집은 밝은이들이 하느님과 함께 사람을 교화하는 곳이고 또한 온갖 착함을 쌓고 온갖 덕을 갖춘 이, 성품에 통하고 공적을 이룬 이, 즉 교화된 이는 교화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과 함께 만물교화에 참여한다. 성품에 통한 이는 착하기 때문에 남들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교화에 참여함은 당연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를 이루고 세상에 광명을 내면서 교화를 한다고 한다. 우리도 이를 본받아서 하느님의 광명과 교화를 세상에 전파해야한다. 사람이 진리를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몰라서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참전계경의 130 사의 가르침에는 ‘가르침이란 윤리와 도학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이 가르침이 있은즉 백 가지 행실이 근본을 얻고 가르침이 없은즉 훌륭한 장인이라도 먹줄이 없는 것 같다.’ 하여 교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참전계경에서의 도학은 하느님의 큰 도를 닦는 공부이다. 또한 제 259 사 수덕(修德)에 보면 ‘수양이란 자신의 수양도 수양이고 남을 수양시킴도 수양이다.’ 라고 하여 남을 수양시킴도 자기 자신을 수양함과 같음을 가르친다. 하느님의 바른 도를 가르치고 전파는 하되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며 전도에 신중해야 된다. 사람이 다른 이에게 말할 때는 사견이 개입되고 특정 교단이 전도할 경우에는 그 교단은 하느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 교단이 제정한 특수한 의식과 교리를 추가로 사람들에게 행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하느님을 믿는 방식이 다르므로 공동으로 집회를 할 경우에는 서로가 동의를 해야 됨이 당연하다. 홍암 나철은 대종교 규약에서 남의 종교도 존중하라고 하였다. 성통공완한 이들이 하느님을 ‘모시고(護侍)’ 또 ‘조회(朝)’ 한다는 말은 성통공완한 이들 뿐만 아니라 만물은 의당 하느님을 공경해야 됨을 의미한다. 앞 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느님이 더 없는 윗자리에 계시므로 만물이 공경해야 함을 함축함과 동일하다. 참전계경은 제 2 사에서 5사까지의 일인 경신, 존봉 숭덕, 도화 등에서 하느님을 공경하라고 직접적으로 가르친다. 제 5 사 도화(導化)를 보면
... 사람이 하늘공예의 조화를 알지 못한즉 하늘과 사람의 이치에 어두워 나의 타고난 성품을 어디로부터 받았는지 모르며 나의 몸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도 모른다. 깨달음이 이것 먼저가 아니면 나머지 깨닫는 바도 없으니 ...
라고 하여 하느님이 계심을 깨닫고 공경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임을 말한다. 성품을 돌아보고 수행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삼일신고와 참전계경에는 하느님 외에 어떠한 이도 경배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느님 이외에 신령이나 밝은이도 사람들의 존경은 받을 수 있지만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하느님은 어떠한 식으로도 형언할 수 없기 때문에 조각되거나 그림으로 그려져 모셔질 수도 없으므로 우상숭배는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방법은 하느님이 사람의 머릿골에 내려준 성품에 맞게 행함이 첫째이다. 영득쾌락에서 ‘영원히(永)’ 는 사후세계가 있음과 사람의 영혼이 불멸함을 말한다. 성통공완하는 이는 원래 사람이었고 사람 중에 성통공완하여 하느님을 뵙고 영원히 산다함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함을 의미한다. 쾌락은 오락을 하거나 오감을 통해 얻어지는 쾌락이 아니다. 이러한 쾌락은 그 오락시간이 지나고 감정에 대한 자극이 사라지면 소멸되는 것이고 덧없는 것이다. 하늘집에는 성통공완하여 순수하게 착하고 덕이 큰 사람들만이 있어 서로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고 서로를 돕고 기쁘게 해주며 내부에서도 솟아오르는 기쁨을 느끼므로 아무런 고통도 없이 쾌락만이 있는 것이다.
다. 하늘집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고 하느님’ 또는 ‘하느님 맙소사’ 등의 말을 한다. 그리고 죽을 때는 착한 일을 많이 하면 하늘나라 즉 하늘집에 간다고 한다. 물질적인 것들이 적은 서민들은 하늘집에서 나오는 큰 길상과 큰 광명을 바라보며 위로받고 산다. 생활이 어렵고 늘 고생하는 서민들도 성품에 맞게 착하게 살면 하늘집에 더 가까이 간다. 남들보다 더 가진 사람들도 그것을 세상을 위해 사용하며 덕을 베풀 때에는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복을 받고 하늘집에 오르는 계단을 더 밟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집은 무력이나 재력이나 또는 지식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착함과 덕을 쌓음으로써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하늘집이 어떤 특별한 누리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여 내세에 너무 집착할 경우에는 현세의 일을 소홀히 하고 미신적인 경향을 보이는 폐단이 많음을 동서양의 역사적 사실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세의 기독교도들은 여러 단계로 묘사되는 지옥과 연옥, 천당 등의 내세에 대해 믿었는데 교회는 이러한 신앙을 이용하여 일반 교인들의 재산을 갈취한 전례가 있다. 하느님 이외에 하위신들을 경배할 경우에는 세월이 지날수록 그 신들에 대한 제사행위가 너무 많아지는 폐단이 생긴다. 일례로 고려시대에는 하위신들을 모시는 음사들이 너무 많아서 신들의 친척들까지도 제사를 지내는 폐단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공자는 내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유교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는 지성스럽게 지내는 것을 보면 공자도 영혼은 죽지 않음을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죽은 지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학자들의 제사를 받고 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지 내세가 있음을 믿고 있었겠지만 그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거나 말하지 않았다. 하늘집은 사람으로서는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헤아릴 길이 없다. 대종교에서는 하느님이 계신 곳이 하늘집이므로 특별한 장소가 아니며 우리의 머릿속에도 하느님이 성품으로 내려와 있으므로 몸 중에서 머리가 하늘집이라고 한다. 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주에는 무수한 누리가 있으므로 이 지구보다도 더 나은 세상도 있을 것이고 못한 세상도 있을 것이다. 하늘집의 문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하나의 세상이 있을 수가 있다. 삼일신고의 가르침을 곰곰이 생각하면 죽음과 삶에 관계없이 우리가 착함을 행하며 사는 것 자체가 하늘집의 계단에 머무르고 문들을 통과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살펴보기로 한다. 사람 중에서 수행하는 밝은이가 성통공완하면 큰 하느님 기틀을 내고 영원히 쾌락을 얻는다고 했으므로 (惟性通功完者 朝 永得快樂) 사람의 영혼은 영원불멸하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기운은 가달(三妄着根 曰心氣身)이므로 영혼은 이 가달인 몸이 변하거나 죽는 것과는 관계없이 참의 입장에서 보면 연속적으로 사는 것이다. 대종교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가달은 참에 대응되는 말로 사람이 죽으면 흩어지는 것들이다. 몸은 참이 아니고 가달이기 때문에 몸이 죽는 것은 걸친 옷이 다 헤어져 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의 영혼이 불멸함은 ‘참 수명엔 맑음 흐림이 없다(眞命 無淸濁진명무청탁)’ 에서도 알 수 있다. 기운은 맑음과 흐림이 있어서 언젠가는 흩어져 사람이 죽지만 참 수명은 순수히 맑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다. 뭇사람은 태어남과 죽음을 포함한 생장소병몰(生長肖病歿)의 고통 속에서 산다고 했으므로 뭇사람들은 여러 삶을 반복하며 윤회 속에 산다. 참전계경에도 윤회에 대한 언급이 여러 곳 있다. 제 306 사 영보(盈)에 ‘다한 악은 아홉에 차서 당시 세상에 악하고 극한 악은 열에 차서 또한 앞 세상부터 악한 것이다’의 구절은 앞 세상 즉 전생이 있음을 말한다. 제 323, 324, 327 등의 일에 쓰여진 “큰덕을 타고나”, “후덕을 타고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등의 구절들도 전생의 지은 복으로 덕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남을 말한다. 이렇듯이 사람의 영혼은 윤회하면서 환경이 다른 세상에 태어난다. 자기가 착함을 많이 행했으면 죽어서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날 것이며 같은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날 것이다. 수행해서 성통공완하면 이러한 유회가 끝나고 하느님을 뵙게 된다. 우리가 현세에 살든지 다음 생에 다른 어떠한 세계에 가서 살든지 관계없이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으며 착함을 행하고 덕을 쌓은 만큼 하늘집의 계단과 문을 통과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고 느껴야 한다.
라. 성직자의 특권이 없다 경에 의하면 성직자라는 신분을 가지는 사람은 별도로 지정되어 있지 않으며 교당이나 의례, 성금 등에 대한 말도 없다. 하느님을 경배하고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을 전파하며 수행을 가르치는 교당을 맡아 일을 보는 사람이 성직자이다. 보통은 교당의 일이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성직자는 다른 일을 못하고 교당의 일만 하게 된다. 경에서 성직자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밝은이이다. 그렇지만 밝은이는 하느님에 이르는 수행을 하는 사람이어서 꼭 교당의 일만 하는 사람은 아니고 세상의 일을 볼 수도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성직자 계급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행하는 중재자라든지 제사장이라든지 하는 성직자의 특권도 없다. 삼일신고에는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특권을 가진다는 말이 없으며 온 인류는 하느님으로부터 세 참을 다 같이 받아서 하느님 앞에서 근본적으로는 다 대등한 입장이다. 다만 참에 돌이키면 밝은이가 된다고 했다. 세 참을 돌아보는 것 이외의 나머지 일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차적인 문제이다. 성직자의 특권을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중세 기독교 역사에서 한 예를 찾을 수 있다. 기독교에는 종교개혁 때까지만 해도 내세에 대한 외경들이 많았는데 단테의 신곡에는 이러한 복잡한 내세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시대의 기독교 성직자들은 신성시되고 천국에 간다는 특권들이 주어졌고 일반 신도들에게는 연옥에 머무른다고 하면서 말년에 그들이 사유재산을 받치면 성찬을 베풀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역사가 있었다. 교회는 재산증식과 교회 사치에 힘쓰고 부패하여 대중들의 교화를 등한시하고 결국에는 종교개혁을 맞게 되었다.
제 4 장 치화신
가. 구성 치화신 장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너희들은 총총히 늘어선 별들을 보아라. 그 수가 무진장하고 큼, 작음, 밝음, 어두움, 괴로움, 즐거움이 다르다. 한 하느님이 뭇 누리를 조성하고 하느님이 해 누리 사자에게 시켜 칠백 누리를 거느리게 했다. 너희 지구가 스스로 큰 듯 보이나 한 알의 누리로 속불이 터지고 퍼져 바다가 변하고 육지가 옮겨져 현상이 이루어졌다. 하느님이 기운을 불어 밑까지 싸고 해의 빛과 열을 쪼여 다니고 날고 화하고 헤엄치고 심는 생물들이 번식했다. (爾觀森列星辰 數無盡 大小明暗苦樂 不同 一神造羣世界 神 勅日世界使者 舝七百世界 爾地自大 一丸世界 中火震盪 海幻陸遷 乃成見象 神 呵氣包底 煦日色熱 行翥化游栽物 繁殖 이관삼열성진 수무진 대소명암고락 부동 일신조군세계 신 칙일세계사자 할칠백세계 이지자대 일환세계 중화진탕 해환육천 내성현상 신 가기포저 후일색열 행저화유재물 번식)
이 장도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에는 여러 형태로 치화되고 있는 우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번째 부분에는 여러 세계를 조성하고 해 세계 사자에게 7백 세계를 거느리라 명령하는 치화신의 치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끝 부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치화 과정의 대략이 설명되어 있다.
나. 주석 너희(爾)라고 친숙하게 불러 하늘을 보라고 한다. 하늘 장에서도 원보 팽우 또는 너희라고 부르면서 하늘에 대하여 설명을 시작한다. 관(觀)은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자세히 보라는 의미이다. 관은 관찰, 관광이나 (마음을) 관하다 등으로 쓰이니 이관삼열성진(爾觀森列星辰)은 하늘의 별들을 그냥 보지 말고 자세히 보아 무한하게 많은 별들이 있음과 그 별들이 각기 다름을 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누리를 위대한 하느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뜻이다. ‘가득 늘어선(삼렬森列)’은 무질서하게 흩어진 게 아니라 질서 있게 늘어서 있다는 뜻이다. 열(列)은 열지어 있다의 의미이므로 단순히 아무렇게나 흩어져(散) 있지 않음을 묘사한다. 하느님은 무수한 누리를 조성하였으되 중력 법칙 등의 자연법칙에 의하여 별들 간에 무질서한 충돌 없이 안정적이고 질서 있게 운행하도록 조성하였다. 뒤의 해 누리가 나오므로 각각의 별들은 각각 하나의 누리로 볼 수 있다. 또한 지구도 하나의 누리라고 하였다.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별은 빛을 내는 항성을 뜻하지만 경에서는 항성, 행성, 위성 등에 관계없이 따도 따로 떨어져 운행하는 천체는 각각 하나의 누리라고 한다. 수무진(數無盡)에서 무(無)는 조화신 장의 주무수세계(主無數世界)와 무상일위(無上一位)의 무와 더불어 창조하고 다스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능력을 표현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하늘도 비고 무한하고 완전히 대칭이어서 무형질(無形質), 무단예(無端倪), 무상하사방(無上下四方), 무부재(無不在), 무불용(無不容)하다. 하느님이 만물에게 내리는 세 참인 성품과 수명과 정기도 지극히 순수하여 각각 무선악(無善惡), 무청탁(無淸濁), 무후박(無厚薄)하다. 앞 장에서는 하느님의 크심을 표현하는 대(大)를 알아봤었다. 무수한 별들의 큼, 작음, 밝음, 어두움, 괴로움, 즐거움이 다름은 우주가 여러 형태로 치화되는 모습이다. 이 여섯 가지의 모습은 크기와 밝기와 즐거운 정도의 세 요소로 구분되어 있다. 크기는 하나 됨의 크기이므로 하나로 아는 덕(德)의 크기에 대비되고 밝기는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慧)의 밝음에 대비되며 즐거운 정도는 처해 있는 세력의 정도이므로 힘(力)의 강약에 대비된다. 이 장에서의 한 하느님(一神) 역시 앞의 두 장의 하느님 즉 조화신 및 교화신과는 다른 치화하는 하느님인 치화신임을 암시한다. 세계와 만물은 2 장 조화신 장에서 가르친 것처럼 이미 창조되어 있으므로 조군세계(造群世界)의 조(造)는 질서 있게 누리들을 조성한다는 의미이다. 해 누리 사자에게 7백 누리를 거느리라 명령함은 치화신의 치화 모습 중의 하나이다. 하느님이 모든 세계를 다스리지만 이렇게 사자들에게 맡겨서 다스리게도 한다. 조화는 하느님만이 하지만 교화와 치화는 신령이나 밝은이들과 더불어 한다. 모든 누리와 물질은 이렇게 하느님과 정신적인 존재에 의해 다스려지므로 물질의 주인은 정신임을 알 수 있다. 해 누리에는 태양과 지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아는 태양계일 수도 있고 태양계를 포함한 더 큰 누리일 수도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천문학적으로 관측된 결과의 태양계 구성물들로는 칠백 누리의 구분 조건을 찾기가 어렵다. 너희 지구(離地)에서의 이(爾)는 부르는 것이 아니고 너의 소유격이다. 한자에는 소유격과 시제가 없어서 소유격은 주격과 같이 쓴다. 지구(地)는 해(日)와 함께 이 경에 나타나며 그 모습이 환(丸)과같이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다는 말은 이 경이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말해진 것임을 명확히 한다. 지구를 하나의 작은 환(丸)으로 표현하여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누리임을 알려준다. 우리가 입김으로 작은 환 정도는 밑까지 불어 감쌀 수 있듯이 하느님은 작은 지구에 기운을 불어 밑까지 쉽게 감쌀 수 있다. 진(震)은 지진의 뜻이 있고 탕(盪)은 ‘씻다’의 뜻이 있으므로 진탕(震盪)은 지진이 일어나고 용암이 분출되어 지표면을 씻듯이 흘러내림을 뜻한다. 그러므로 중화진탕(中火震盪)은 가끔씩 지표로 분출되는 지구속의 마그마의 활동을 묘사한 것이다. 속불이 터지고 퍼져 바다가 변하고 육지가 옮겨지는 현상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여섯 대륙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지질학자들의 말로는 지구는 지표뿐만 아니라 내부도 마치 살아있는 듯이 맹렬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상(見象)은 생물의 활동이 있기 이전부터 있어온 현상으로 바람 불고, 비오고, 벼락치고,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지표가 변하는 등의 지표면 위에서 일어나는 온갖 자연 현상이다. 이러한 지표면 위에 하느님께서 기운(氣)을 불어넣으시고 햇볕과 열을 비춰 생물들이 번식하게끔 만드셨다. 기운은 공기가 아니라 뒤의 마음과 기운과 몸의 기운으로 간주해야 한다. 대기 즉 공기는 앞의 지표 현상의 일부로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봐야한다. 대기가 만들어질 때 하느님은 산소와 질소 등의 공기의 조성비를 생물이 번식할 수 있도록 조절했을 것이다. 이러한 공기는 몸의 물질에 관계된 것이므로 맑음과 흐림이 있는 기운과는 다른 요소이다. 생물은 다니고 날고 등과 같이 그 활동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온갖 동식물을 다 포함한다. 저절로 만들어진 지구의 환경에서 동식물들이 저절로 발생하여 진화한 것이 아니라 만물이 생장할 수 있도록 하느님이 지구의 환경을 만들어줬고 동식물도 창조하여 번식하게 했다는 창조론을 가르친다. 이 장에는 치화의 대상으로 세 가지의 군들이 있다. 별이 모인 세계인 우주, 동식물이 모인 지구 또는 각각의 세계, 너희(爾)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모임인 사람 사회이다.
다. 우주와 태양계의 모습 과학자들이 말하는 우주의 나이는 100억 년 정도 된다고 한다. 은하수로 불리는 우리 은하는 크기가 십만 광년 정도 되고 그 안에 태양과 같은 별들이 2000억 개 정도 있다. 우주에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수 천 억 개 존재한다. 이들 은하들은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중력 법칙에 의해 은하단의 질량 중심을 중심으로 회전운동 한다. 하나의 은하단은 몇 개의 은하에서 수 천 개의 은하들로 구성되어 있다. 은하들은 관측된 질량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운동하므로 천문 관측되는 별들보다 약 6배 많은 질량의 암흑물질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태양은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그 반경의 0.7 정도 되는 부분에 위치한다. 태양계에는 태양과 8 개의 행성과 명왕성을 합한 주요 위성 24 개와 아스트로이드라고 하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2000 개가 넘는 작은 물체들과 가끔 보이는 혜성들이 있다. 그 외에 명왕성 궤도 부근에는 얼음이나 암석 등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카이퍼 띠가 있으며 태양 주위에 1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는 오르트 구름대(전체 구성물의 질량은 지구와 비슷함)가 존재하여 그 구성물 중의 하나씩이 태양 근처까지 오는 혜성이 된다. 유성우는 태양이나 행성들의 중력의 영향으로 쪼개진 혜성의 조각들이 지구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천문학적으로 밝혀진 태양계의 구성물들을 7백 누리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을 찾을 수 없다. 지구는 세 번째 행성으로 태양 빛이 적당히 쬐어지고 그 외 환경도 적당하여 여러 행성 중에서 인류가 살기에 가장 적합한 자연환경을 가졌다. 태양과 목성 등의 거대한 천체는 외부로부터 날아오는 물체들로부터 지구를 보호한다.
라. 광속 문제
과학에서 최고로 빠른 물체의 이동 속도나 통신 속도는 초당 3십만 킬로미터인 광속이다. 물체는 속도가 빨라지면 그 질량이 점차 커지고 광속에 가까워지면 그 질량이 무한대가 되어 광속을 넘을 수가 없다. 경에서는 하느님은 무수한 누리를 창조하고 교화하고 다스리시므로 하느님의 속도는 광속보다 빨라야 된다. 하느님께서 수 억 광년 되는 거리를 광속으로만 다니시면 어떻게 온 우주를 다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티벳 승려가 쓴 ‘나는 티벳의 라마승이었다’ 라는 책을 보면 순식간에 지구를 벗어나 유체로 갔다 온 다른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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