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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칼럼] [종사상] 국학의 속성
관리자 2019-11-14 15: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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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학이라 하면 국가정체성의 학문 이전에 국수주의적 학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국학 인식의 본보기가 되는 일본의 국학이 국수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학의 속성을 파악함에 있어, 그 내적 속성(특수적․민족적 속성) 이상으로 중요시되는 것이 외적 속성(보편적․인류적 속성)이라 할 것이다. 내적 속성만 강조된다면 배타적 학문으로 전락할 수 있고 외적 속성만을 지향한다면 이미 국학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국학은 우리 학문의 근본이요 출발인 동시에, 세계학문으로 나가기 위한 토대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국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자립학을 토대로 창조학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학의 속성이 무엇인가를 궁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타 국가학 또는 민족학들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진정한 세계학을 추구할 때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국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먼저 그 동안 우리 국학에 대한 연구 성향은 국학의 속성을 분명하게 개념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즉 우리 것에 대한 기준이 없이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개념 설정과 학문의 제업적에 대한 나열형식의 탐구, 그리고 역사적 상한에 대한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국학이 국학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내적 속성인 ‘사상적 정체성’과 ‘공간적 차별성’, 아울러 우리 민족의 형성으로부터 민족사를 관통할 수 있는 ‘시간적 연속성’을 새롭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외적 속성이라 할 ‘보편적 개방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먼저 국학은 ‘사상적 정체성’을 내포해야 한다. 
사상적 정체성이란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성에 근접한 가치로써 타집단(타국가․타민족)과 구별되는 철학적 사유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 불교가 인도철학의 정체성 위에서 자리 잡은 사상체계라면 한국 유교는 중국철학의 정체성 위에서 체계화된 사유가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불교나 유교는 한국사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국철학으로는 간주하기 힘들다. 철학은 학문 이전의 학문이요 사상 이전의 사상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일이다.
일본 동경대학교 대학원 철학분야 수사과정(修士科程) 및 박사과정(博士課程) 교과과정을 보면, 일본유학사(日本儒學史)가 중국철학 속에, 불교사상사․지나불교사(支那佛敎史)․일본불교사가 인도철학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커리큐럼은, 1980년 12월 24일에 개정되어 1981년 4월 1일부터 시행한 ‘東京大學大學院 人文科學硏究科規則’의 별표 ‘修士科程’ 및 ‘博士課程’의 교과과정에 실려 있는 것이다.
한국의 불교나 유교의 정체성 또한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확인해 주는 것이다. 특히 학문의 정체성 문제가 세계화 시대의 학문교류과정에서는 더욱 중요시될 것으로 판단된다. 불교를 가장 잘 성숙시킨 중국이 불교가 아닌 유교를 국학의 중심으로 삼은 것이나, 불교와 유교가 다양한 문화로 자리 잡은 일본이 신도를 국학의 모태로 세우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우리 스스로 숙고해야 할 일이다.

다음으로 ‘공간적 차별성’ 또한 국학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공간적 차별성이란 중국․일본․미국 등의 다른 지역 학문과 구별됨을 말하는 것으로, 지역적 차별성보다는 학문적 대상 혹은 방법의 차별성을 일컫는 것이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이 우리 국학의 의미에 부합하는 학문적 대상을 연구하는 경우는 이 속성에 포함되는 것이요,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라도 우리 국학의 의미에 벗어나는 학문적 대상을 연구할 때에는 이 속성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인종이 어울리는 지구촌사회가 가속화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다.
이것은 철학하면 당연히 서양철학을 생각하는 우리 지식인들의 타성을 성찰케 하는 기준인 동시에, 우리의 현실을 고려한 안목과 해석을 외면하고 서양의 방법론(랑케사관)에만 반세기 이상을 허비한 우리 사학계에도 도약을 위한 또 다른 준거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수많은 외래사조에 의해 유린당한 우리 어문학의 현실을 청산하는 데도 중요한 방향타가 될 것이다. 
먼저 철학에서는 우리의 사상사를 흥건히 적신 불교나 도교 그리고 유교의 가치는 인도철학과 중국철학의 정체성 위에서 행세해 왔고, 현금에 유행하는 철학풍조도 모두가 정체성이 애매한 서양사조에 불과하다. 지식의 상아탑을 자처하는 대학에서도, 철학과의 의미는 서양철학과를 말하는 것으로 당연시된 지도 오래다. 혹 우리의 철학을 말하려는 식자는 홍두깨나 뚱딴지로 열외되기 일쑤다. 지금의 우리 철학에서는, 우리가 긴 세월을 향유해온 삶의 슬기와 가치를 대변해 주는 논리는 찾아볼 길이 없다. 한 마디로 짐승처럼 생겨나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온 민족이 우리 무리인 것이다. 우리의 철학 현실이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대접하고 있다.
또한 랑케사학을 주요한 방법론으로 떠받들어 온 우리 사학계의 문제는, 비단 어제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치른 우리의 희생 또한 적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중화사관과 식민주의사학 극복을 위한 많은 부분이 그 논리 앞에 밀려났다. 더욱이 주변학문들과의 발전적인 협력연구도 그들의 고고함으로 초지일관 빗장을 건 상태다. 그 연구의 외연은 더욱 좁아졌고 정체성 또한 갈수록 모호해 보인다. 일본의 한국사 경시풍조나 중국의 한국사 찬탈 행위 뒤에는, 이러한 우리 사학계의 내조가 한 몫을 했다는 핀잔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언어는 어떠한가. 근자에 미국의 촘스키(Chomsky)가 창안한 변형생성이론이 국내 어학계의 유행처럼 번진 상태다. 변형생성이론이란 연역논리를 토대로 실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문법을 해명하는 방법인데, 그것은 국어의 역사를 모르고도, 문헌고증방법 같은 것은 행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문학비평의 방면에서도 원형비평과 구조주의를 넘어 미국의 신비평과 러시아의 형식주의․정신분석학적 연구․마르크스주의문학론․문학사회학․수용미학․해체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수용되면서, 짧은 한 시대 속에 서양의 이론과 방법 대부분이 우리 문학계에 난립하고 있음이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외래의 방법론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국학연구의 대부분을 외래의 방법론에 맡겨온 까닭에 창조적 시각을 잃어버린 우리의 안목을 균형적으로 교정해 가자는 의도일 뿐이며, 뼈를 깎는 성찰이 없이는 우리 중심의 학문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더불어 국학은 ‘시간적 연속성’을 소중히 해야 한다. 
시간적 연속성이란 우리의 역사 속에 단절되지 않고 흘러온 우리 것에 대한 통시적 가치라고 규정짓고 싶다. 특히 긴 역사 속에서 다양한 가치가 유입되어 습합 또는 혼재되어 온 우리의 경험에서는 이러한 연속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수많은 건국이 한 번의 조국(肇國)으로 관통하는 당위성을 제시해 줌은 물론, 다양한 외래사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융회와 통섭을 가능케 한 사상소(思想素)의 연면한 흐름을 긍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불교로 윤색된 듯한 신라의 화랑도가 우리 고유의 풍류도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려 불교사회에서 행해진 팔관의례 역시 고구려 동맹이나 신라 토속신앙의 계승의식이 나타나고 더 근본적으로는 단군 시대의 소도정신까지 소급되어 올라간다. 또한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의 제례 속에도 전래의 선가적 정신의 맥은 끊이지 않았다. 근대 국학의 주요 인물로 꼽히는 신채호나 박은식도 우리 국학의 줄기를 상고 시대로부터 연면히 흘러왔음을 주장하는데, 여기서도 국학의 시간적 연속성에 대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근대문학이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전통단절론에 토대를 둔다면, 우리의 근대문학은 서양 혹은 일본의 영향 속에 만들어진 모방문학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전통계승론에 근거한다면 우리의 근대문학이 조선조 실학문학을 계승한 발전적 문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일제 질곡의 시대를 일제식민지시대로 보느냐 임시정부시대로 보느냐도 이러한 시간적 연속성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이다.

끝으로 국학의 ‘보편적 개방성’ 또한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보편적 개방성이란, 국학의 집단(국가 혹은 민족)적 속성을 넘어 타집단 학문과의 조화․지양을 통해 상생의 논리를 추구해 가는 상대주의적 가치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다문화․다종교․다인종 사회가 보편화되는 추세에서, 국학의 국수주의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세계화 시대의 국학으로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근자에 추진 중인 중국의 국학이 개방성을 중요한 속성으로 내걸고 있다는 점도 이것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人民日報』한국발행처, www.einmin.com) 
우리 민족의 성정은 개방적이요 이타적이다. 우리의 건국이념이 홍익민족이 아닌 홍익인간으로 출발했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 준다. 또한 이것은 우리 국학의 정체성 속에 인류보편적 속성이 배태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요, 국학의 미래지향성의 좌표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국학이 국수적이요 폐쇄적이라는 한계는 이미 경험한 바다. 그들의 군국주의적인 과거와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지금의 욕심 뒤에도 일본의 국학이 상존해 있다. 중국 국학의 중심인 유교 역시, 중국인에 의해 그 폐쇄적 한계가 이미 지적된 가치다. 일찍이 류시페이가 지적한 유가(儒家)의 네 가지 단점 중에서, 상호 비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고 이설(異說)을 배척한다는 지적에서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정서는 현금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중화사관의 욕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우리 국학이 중국이나 일본의 국학보다는 개방성에서 앞선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달리 말하면 미래의 국학 경쟁(동북아시대의 논리․상생적 세계화의 논리)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의 경험을 보더라도, 불교나 도교 그리고 유교의 전래과정에서 나타난 우리 고유의 정신적 속성은 배타와 대립이 아닌 포용과 조화의 가치로 나타났다. 일찍이 신라의 석학 최치원이, 우리 국학의 정체성을 풍류도로 규정하고, 그 정신의 운용이 현묘지도로 나타나며, 그 속에 숨어있는 조화적 속성을 접화군생의 가치로 단정한 것도 이것을 뒷받침한다.
특히 근대 국학의 선각으로 우리 국학의 정체성을 제시했던 나철의 사례에서는 국학의 보편적 개방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 나철은 근대 우리 민족에게 홍익인간의 보편철학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인물인 동시에 홍익인간의 삶을 몸소 실천코자 했던 인물이다. 나철의 사상을 국수주의적 방향으로 몰고 가는 학계 일부의 시각도 있으나, 이것은 나철의 독립운동에만 의미를 두었을 뿐, 사상의 본령을 올바로 보지 못한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의 사상이 오로지 사해일가(四海一家)나 만교합일(萬敎合一)의 인류보편적 성격으로 일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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