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정치이론과 단군민족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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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19-11-14 10: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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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정치이론과 단군민족주의 - 정 영 훈(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
한국사 속에는 단군민족주의적 현상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일련의 흐름이 존재했다고 본다. 이 현상의 기본적 특징은 스스로의 집단적 정체성을 단군의 자손으로 생각하는 데 있다. 이 단군민족주의가 대중적으로 공유되어 명시적으로 주창되기 시작한 것은 한말—일제기에 들어서이다. 한말에 들어서면서 단군의 자손 의식이 확산되고 단군을 역사의 기점으로 기산하는 단기년호가 본격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 현상이 대중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상정한 종교(단군교—대종교)가 창립되어 영향을 크게 미치기 시작하였고, 단군의 자손으로의 민족사를 연구하고 그 고유문화를 발굴하고 보전하려는 학술활동 흐름도 생겨났다. 단군민족주의는 한국의 정치사상사 속에도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단군민족주의는 자주독립-통일-근대화-민족공동체 같은 과제를 모색하는 지적작업에 관여하였으며, 특히 민족주의사상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삼균주의(조소앙)나 신민족주의(안재홍) 같은 정치이론은 단군민족주의적 정치이론으로 규정할 수가 있다고 본다. 이 논문에서는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정치이론을 단군민족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안재홍은 식민통치기와 해방공간을 통하여 민족의 자주독립과 통일을 위해 분투하였던 저명한 민족운동가로서, 언론과 현실정치 및 국사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었다. 그는 특히 청년시절(1917)에 대종교인이 된 후 대종교의 영향하에 민족사와 고유철학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고, 특유의 민족주의사상을 정립하였다. Ⅱ 안재홍은 우리민족을 공통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같은 핏줄을 계승한 ‘동일혈연체’라 인식한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만주와 한반도 및 중국대륙에 걸친 지리적 공간속에서 ‘생활협동체’로서 이어져 왔으며, ‘공동문화’의 유대 속에서 결속되는 가운데, 무수한 이민족과의 민족전쟁을 거치면서 ‘운명공동사회’를 확인해 왔다고 본다. 그리고 동일혈연체이자 생활협동체이며 운명공동사회로의 우리 민족 역사는 단군이 조선을 건국함으로부터 본격 출발하였다고 본다. 안재홍은 단재 신채호의 민족주의사학을 계승한 사학자로 꼽히고 있으며, 그 스스로도 “국사를 연찬하여 써 민족정기를 불후에 남겨둠이 지고한 사명임을 자임”하기도 하였었다. 그의 국학연구에서 단군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는 단군을 떠나서는 조선사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스스로 “단군론으로 조선의 민족적 독자성과 문화의 특수성을 선양하는 원두를 삼았다” 하였다. 단군을 한민족의 역사를 시작한 국조로 보는 안재홍은 단군을 국민적으로 숭앙할 필요가 있고, 그 유적 또한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가 단군을 독립과 단결을 매개하는 상징으로만 보지 않고 균등사회와 공영국가 건설을 강조하는 민족애와 동포애의 근거로 본 것은, 그의 단군론이 가지는 정치적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안재홍이 ‘단군민족주의’의 흐름속에 있었고 그 주역의 한사람이었다는 것은, 그가 대종교의 교인이었고, 교리연구에도 깊었으며, 해방후에는 교단의 주요 지도자 중 한사람으로 참여하였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종교는 단순히 단군민족주의의 산물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단군민족주의를 보급하고 실천한 주역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대종교는 단군을 한민족의 국조이자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천신(天神, 한배검이라 부름)으로 상정하고 종교적 구원까지를 단군에게 의탁하는 종교로서, 1909년 나철에 의해 중광(重光)되었다. 민족운동의 주요지도자들과 저명한 국학연구가들이 대종교와 교유하면서 자신들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심화시키고 학문적 상상력을 보강 받았다 할 수 있는데, 안재홍의 대종교 입교 역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대종교의 사상은 안재홍의 역사연구나 국학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사학의 계승자라고까지 불리는 안재홍의 고대사연구에서 대종교적 역사인식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가 제기한 부루신도(밝신도)론이나 불함문화론은 대종교의 고유문화론을 부연한 것이라는 의의를 가지며, 비—씨—몬의 원리나 밝—발—배 원칙 같은 삼분법적 고유철학론에서도 대종교의 삼일철학적 사유방식이 살아있다 할 수 있다. Ⅲ 안재홍의 정치사상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신이 찾아낸 한민족의 고유철학으로부터 ‘신민족주의’라는 통일지향 정치이념을 도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안재홍의 이 신민족주의론은 ‘다사리이념’을 비롯한 우리의 고유사상에서 추출된 ‘조선 독자의’ 이념임을 표방하는 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을 가진다. 안재홍은 해방직후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를 발표하면서 자신이 제시하는 신민족주의이론의 민족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우리민족 고유의 세계관과 사유구조를 비—씨—몬의 원리와 ‘알’ 혹은 ‘얼’의 개념 및 ‘밝—발—배 원칙과 그의 삼즉공식(三卽公式)’ 같은 독특한 용어를 구사하며 설명하였다. 안재홍의 고유철학관은 그의 신민족주의 정치이론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신민족주의에서 특히 중시하는 것은 ‘다사리’이념과 ‘개합변통․종합회통’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극좌․극우파의 계급주의 입장과 공식주의노선을 비판하는 것이며, 그 대안으로의 균등통합원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안재홍은 특정의 공식주의나 획일주의에서 벗어나 지양․회통하는 융통성과 주체적 자세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그는 우리 고유 정치철학에는 공식주의나 비현실적 관념주의, 아집과 독점에서 탈피하여 지양․회통할 것을 지향하는 원리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원리야말로 ‘인세(人世)성패의 관건’이라고까지 강조한다. 한편 안재홍은 고유 수사 ‘다섯’(五)을 해석하는 가운데 다사리 이념을 추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 ‘다섯’은 ‘다사리’라는 조선 상대(上代)의 만민총언․대중공생하는 민주주의 정치원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고사나 단군 건국설화에 보이는 홍익인간이나 재세이화․접화군생의 대도는 다사리주의의 근본이념이 태고에서 이미 비롯된 것임을 반증해준다고 말한다. 그는 또 정치는 ‘다사리’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다사리’는 모두 다 말하게 한다는 의미의 ‘다 사리운다’ 혹은 ‘다 사리어’에서 유래하는 말로서, 만민총언(萬民總言)․만민공화(萬民共和)의 자유 또는 국민주권원리와 만민공생․대중공영의 평등․복지 관념을 함께 포함하는 말이다. 민주정치의 기본원리를 함축한 말이라 할 수 있으며, 정치(政治)를 의미하는 ‘다스린다’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다사리’이념은 국민주권의 민주정치와 함께, 특정계급이나 개인의 독재나 독점을 거부하고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자유와 복지를 누리는 사회상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조선 고유의 민주주의이념이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에서의 계급독재적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며, 우리에겐 이토록 훌륭한 고유의 정치철학이 있었는데, 외래한 그릇된 제(諸)사상에 의해 오랫동안 엄폐되어 있었다고 개탄한다. 안재홍이 자신의 정치노선을 고유철학으로부터 끌어오고 고유사상에 의해 정당화하고 있는 대목은 전적으로 ‘단군민족주의적’ 사고의 소산이었다 할 것이다. 단군민족주의는 불교나 유교․도교 등 외래의 사상문화가 유입되기 전에 존재하였던 단군시대 이래의 고유문화와 사상종교를 중시하고 그의 부활을 통하여 민족독자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경향을 갖기 마련인데, 이 같은 사상은 대종교 등 단군을 신앙하는 종교에서는 물론이고 한말 일제기의 국학연구가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찾아진다. Ⅳ 해방후 안재홍은 통일민족국가를 하루바삐 완성하여 ‘민족천년의 웅대한 재출발’을 기약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지적하면서 그를 도모할 수 있는 전략이론으로 신민족주의를 제시하였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론은, 민족을 혈연적․지역적․문화적 동질성을 토대로 하여 인류역사와 함께 형성된 운명공동체로 규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 같은 민족관의 연장선상에서, 안재홍은 ‘민족자존의 생존협동체를 추구하는 주도이념으로의 민족주의’는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민족주의는 당연히 ‘원본적(源本的) 이념’으로 지배적 지위가 부여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는 민족주의가 하나의 사상으로서는 빈곤하다는 견해에 반대하며, 민족주의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엄숙한 현실의 요청’이라 강조한다. 안재홍의 민족주의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공동운명성—동일운명성이다. 그는 하나의 국가를 통일적 공동체로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요소가 이 공동운명성이라고 본다. 스위스 내부의 독일․프랑스․이태리계나, 캐나다 내부의 영국계․프랑스계가 혈연을 달리하면서도 하나의 국가 밑에 강고한 결속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동일운명의 유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조선의 경우도 혈연적 공통성이 존재하는 유리한 조건이 있지만, 이 동일운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통일과 결속을 이루지 못한다고 본다. 안재홍은 우리의 경우 공동운명성은 역사 속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라 본다. 그는 특히 이민족과의 투쟁과정에서 이 공동운명성이 발휘되었고 요청되었다고 파악한다. 그는 우리민족이 공통한 조상에서 물려받은 같은 핏줄을 계승한 ‘동일혈연체’이고, 만주와 한반도 및 중국대륙의 일정한 지역과 공간에서 ‘생활협동체’로서 이어져 왔으며, ‘공동문화’의 유대에서 결속되고 무수한 이민족과의 ‘백열(白熱)한 민족전(民族戰)’ 속에서 공동운명을 확인해온 ‘운명공동사회’라 말한다. 또한 우리민족은 하나의 공동운명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있다고 본다. 그는 민족은 피와 지역의 공동성에 기반하여 오랜 역사기간동안 형성돼온 ‘강렬한 정의(情誼)와 의지의 결합체’인만큼, 동일운명을 떼매고 나아가는 것은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객관의 조건’이라 규정한다. 그는 민족은 계급을 초월하여 공동체로 결속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계급보다는 민족이 우선적인 가치이며, 계급투쟁보다는 민족투쟁이 항상 선결적 중요요인으로 대두되었었음을 강조하였다. 또 민족내부의 계급적 갈등은 민족적 공동운명성이 보장되기만 하면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우리민족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초계급적으로 정복되어 압박받고 착취당하다가 초계급적으로 해방되었다고 본다. 그는 한민족은 자주독립할 권한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조선은 혈연적으로 순수 단일한 점에서, 동일지역의 오천년 조국을 지켜온 점에서, 동일언어 동일문화로써 강고한 운명공동체로써 존속하는 점에서, 단연 독자적 생존협동체로서의 조국을 재건하여 국제협력의 한 분담자가 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동일혈연의 공동운명성은 ‘초계급적 단결’과 ‘통일민족국가’ 건설의 당위성과 가능성의 근거가 된다. 그는 독립․자주를 위해 4000년간 용감하게 투쟁해온 민족정신의 전통은 ‘단군건국의 성업(聖業)’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 강조하고, 홍익인간이라는 ‘단군대황조(大皇祖)’의 건국이념을 현대적으로 살려서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분열을 극복하며 민주․평화․호조․협동의 과제를 완수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런데 안재홍의 운명공동체로의 민족론은 계급과 사상을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을 촉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균등사회를 이루어야 할 당위성으로 나아간다. 그는 숱한 외침의 과정에서 공동투쟁하며 영욕을 함께 해온 ‘삼천만대중’은 앞으로도 동일운명의식하에 움직여야 하고 장차 건설할 사회 또한 ‘동일운명사회’로 건설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안재홍이 바라는 국가는 특정계급의 독재나 계급투쟁이 지양된 ‘초계급적인 통합민족국가’였다. 이는 “모든 진보적이요 반항 침략제국주의적인 지주와 지본가 및 농민 노동자 등 근로층 인민과를 통합한 신민주주의 국가”로 표현되기도 한다. 안재홍은 진정한 민주주의에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극좌적—극우적 계급독재가 배격돼야 한다고 본다. 그는 국가의 권력과 부가 지주와 자본가 등 소수 특권계급에게 독점되어 착취와 피착취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계급간에 투쟁이 발생하기 때문에 애국심이 생겨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그리고 민족성원간에 동일운명의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 자체가 균등사회․공영국가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안재홍은 이 같은 정치목표들은 폭력적 방법이 아니라 의회제도와 민주적인 입법수단에 의해 추구돼야 한다고 본다. 그의 신민족주의론은 ‘폭력에 하소하는 계급투쟁’을 지양․청산하고 전민족이 협동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을 표방하는 만큼, 당연히 쟁점들을 피 흘리지 않고 의회제도를 통해 ‘합법적인 입법수단’으로서 해결할 것을 추구하고 있다. Ⅴ 신민족주의는 안재홍이 해방후 국민당을 창당하면서 그 지도이념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국민당은 그 창당선언에서 ‘통일민족국가 창건의 엄숙한 과제’를 완수하기 위하여 ‘공동운명’을 각성할 것을 촉구하면서, 신민족주의는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이념이라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안재홍이 제시하는 정책대안들은 주권적 국민의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려는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절충한 혼합형의 사회․경제제도를 추구하고 있으며, 국민각자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각종의 복지제도를 첨가하고 있다. 한편 그는 자신이 제시하는 이 같은 정책들은 고정적․배타적으로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여건에 따라 수정․변경될 수 있는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의 이런 언명은 구체적인 정책대안들은 사회적인 여건과 정파간의 타협에 의해 얼마든지 절충될 수 있는 것임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론은 조소앙이 제기한 삼균주의와 함께 좌우합작—민족통일전선 형성 과제와 통일민족국가 건설과제와 관련하여 민족주의진영에서 제기한 대표적인 정치이론이라 할 수 있다. 안재홍도 자신의 신민족주의가 삼균주의와 정신과 지향에서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안재홍은 부(富)․권(權)․지(智) 세 가지가 인간생활의 기본요건이고 고금동서의 사회문제와 갈등은 이 3자의 불평등에서 유래된다는 삼균주의의 설정에 동의하였으며, 이 같은 불평등을 발본적으로 제거할 것을 추구하는 삼균주의는 자신의 신민주주의와 표리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안재홍은 삼균주의의 균권․균부․균지론을 균등경제․평권정치․공영문화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안재홍은 삼균주의와 신민족주의가 다른 점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신민족주의(신민주주의)는 곧 삼균정책의 토대위에 그 만민공화 대중공생의 신사회(新社會)국가를 건설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다만 삼균주의가 권리의 평등만을 말하는데 대하여 신민주주의는 근로와 봉사의무의 균등도 중시하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이래 안재홍이 추구해온 목표는 통일민족국가 건설이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신민족주의는 그 같은 과제를 성사시키기 위한 사상적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그의 정치활동과 언론활동은 통일민족국가를 성취하기 위한 나름의 모색이자 실천활동이었다 할 수 있다. 그는 민족적 자주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자였지만, 그러나 미소 두 강대국이 한반도를 나누어 점령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였고, 두 강대국으로 하여금 한반도문제를 두고 서로 갈등하게 하면 통일은 더 멀어지리라 보았다.
물론 통일민족국가를 위한 안재홍의 모색과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고 분단과 상쟁을 막지 못하였다. 좌우익이 협조하지 않았고 미소 역시 자국의 이익이 관철되는 구도를 원하였던 것이다. 안재홍은 단독정부 구성을 위한 5‧10선거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분단이 현실화된 조건 속에서 남쪽의 국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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