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글은 국학의 선열 예관 신규식(1879~1922) 선생의 시다. 1920년「진단(震檀)」창간에 즈음하여 동지들을 회상하며 읊은 것이다. 흘긴 눈으로 잘못된 세상을 보면서, 바른 세상 만들자고, 옳은 세상 세우자고 살다간 분이다. 삼신의 뜻으로 배달의 영광을 되찾아 보자고「진단」을 창간했으나, 그의 건강과 함께 뜻을 접었다.

일제하 순수 국학 잡지였던「한빛」 또한 마찬가지다. 1927년 창간하려 하였으나 일제에 원고가 압수되어 발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1928년 대종교가 다시 일어난 중광(重光)의 정신으로 창간하여, 그 해 8월 통권 6호로 폐간되고 만다. 국학의 선열 이윤재(1888~1943) 선생이 편집을 맡고 김교헌,문일평,이능화,최남선 등, 많은 국학자들의 옥고를 실었다.

오늘「알소리」를 창간하면서 문득「진단」과「한빛」을 생각해 보는 것은, 그 잡지를 만들고 이끌려했던 국학 선열들의 정신이 다시금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국권을 잃어버린 암담한 시대상황 속에서, 국학의 뿌리를 찾아 세워 조국광복을 도모하고자 했던 그 분들의 역정에 새삼 느꺼움이 온다.

국학의 척박한 상황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질곡의 시대에 광복을 위해 외쳤던 국학이나, 분열과 혼돈의 시대에 하나됨과 질서를 위하여 부르짖는 차이 뿐, 우리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애틋함에는 추호의 간극(間隙)이 없다는 것이다. 예관 선생이「통언(痛言)」에서 절규했듯이, 국학을 잃어버린 업보가 무엇이었는가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말이 당연시되는 지금이다. 경제의 규모가 세계의 상위권에 다다라 있고, 한류(韓流)의 열풍이 동양을 넘어 서양까지 요동치고 있다. 세계적이란 수사(修辭)가 붙은 많은 대회들이 심심치 않게 열리고, 군(郡)이나 면(面) 단위까지 각양각색의 문화잔치가 넘쳐나는 추세다. 영어마을이 여기 저기 들어서고, 원어민 교육 열기로 시골 마을들까지 호들갑이다. 한국 속의 세계라는 말도 낯설지 않은 시대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 국학의 정체성이다. 늘 박토(薄土)의 역경 속에서 잡초처럼 생존해 왔고, 외래학(外來學)의 열풍에 밀려 휴지기(休止期)로 보내기가 다반사였다. 세계학이 범람하고 문화의 풍년기라고 이야기되는 이 시대에도, 국학에 대해 변명을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수많은 학문적 업적과 문화적 극성 그리고 한류 열풍이 우리 국학의 모습을 대변하고 상징화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우리의 알맹이 없는 문화적 현실과도 부합되는 말이다

「알소리」는 바로 풍요 속에 허덕이는 빈곤을 채우기 위한 마당이다. 우리의 ‘얼’을 올바로 깨우치는 일을 할 것이다. 우리 민족성원들에게, 나아가 인간들에게 ‘알’ 것은 알리는 일을 할 것이다. 우리의 국학 선열들이 얼간이들을 깨우치기 위해 필봉을 휘두르고 얼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뜻’을 세운 것처럼, 알토란같은 올곧은 가치를 알게 할 것이다.

시류(時流)의 변화 또한 우리를 다급하게 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의미는 내일을 위해 사라져야 할 골치덩이로 매도되고 있고, 탈민족주의라는 풍조가 신시대 지식인의 유행인 양 횡행한다. 우리는 냉철한 이성의 눈으로 그들을 질타할 것이다. 탈민족의 이면에 숨겨진 제국적 침략주의의 그림자와, 세계화란 낭만에 가려진 문화적 패권주의의 용트림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孔子)의 열기도 중국 대륙에 새로이 불고 있다. 새로운 중화주의를 위한 가치만들기 작업의 핵심이다. 한무제(漢武帝) 시절의 동중서가 유교를 국학의 위상으로 세워 논 이후, 중국 정신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 공자사상이다. 20세기 공산주의의 흥기와 더불어 퇴조되었던 그 사상을, 다시금 중국 정신의 기둥으로 세우려 하는 것이다. 중국의 새로운 비전인 신중화주의의 야망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말한다. 이미 베이징 인민대학에 국학원(國學院)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고, 중국 각지의 대학에 국학원 설립이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에 대한 반증이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국학과 신도(神道)를 토대로 한 일본의 국학을 보면서, 우리 국학의 근간이 무엇인가를 쉽게 암시받을 수 있다. 더욱이 중국 국학의 중심인 유교의 질곡에서 긴 세월 허덕이고, 일본 국학의 뿌리인 신도의 정신적 침략으로 반세기를 유린당한 우리다. 국학 선열들이「진단」이나「한빛」을 통해 극복코자 했던 것이, 이러한 외래 가치들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 투쟁의 일환이었음도 우리는 안다.

21세기의 행보도 한 걸음 지났다. 미래의 희망과 절망, 발전과 퇴보, 영예와 굴욕 등의 선택 또한 우리들의 몫이다. 너와 나를 넘어 우리로 가는 길이 통일의 길이요, 민족을 넘어 인류로 향하는 길이 진정한 세계화의 지향이다. 다만 너와 나를 구별하는 가치를 바로 세우고, 인류로 향하기 위한 민족의 중심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학이요,「알소리」의 역할이다.

이제 다시금 ‘한뜻’을 품고 걷고자 하는「알소리」의 동지들에게 외친다. 오늘을 살아서 후회를 남기지 않을 내일을 맞자고. 오늘을 기꺼이 버려서 부끄러운 조상으로 기억되지 말자고. 이것이야말로 예관 선생이 노래한 “정동회적자(情同懷赤子) 황약견명성(恍若見明星)”의 가치와 부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