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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일 2006-10-02 오후 4:00:08 조 회 수 1933
제 목 삼법수행의 목표
내 용
삼법수행은
지감(止感)을 통한 무선악(無善惡-착함과 악함이 없는 마음)과
조식(調息)을 통한 무청탁(無淸濁-맑음과 흐림이 없는 기운),
그리고 금촉(禁觸)을 통한 무후박(無厚薄-두터움과 엷음이 없는 몸)의 경지를 추구함으로써,
반망즉진(返妄卽眞-거짓을 돌이켜 참으로 나아감)과 반진일신(返眞一神-참을 돌이켜 하느님께로 합함)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성통(性通-소아적 수행의 완성)과 공완(功完-대아적 수행의 완성)을 하여 신인합일(神人合一)․홍익인세(弘益人世)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과 같은 말이다.

일찍이 발해 국상(國相) 임아상은 「삼일신고해설」해설에서, 삼진의 성(性)은 원[圓(○)]이고 명(命)은 방[方(□)]이며 정(精)은 각[角(△)]이라 했다.

이것은 천원(天圓)․지방(地方)․인각(人角)의 어울림은 곧 신과 물질과 인간의 조화요 이것은 바로 세 참함을 바르게 세우는 삼법수행의 묘리와도 상통함을 말하는 것이다.

서일도 오직 인간만이 만물의 영수(靈秀)로서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직 사람은 본 정신(靈)이 만물 중에 빼어나[秀]서,
위로 하느님께 합하며
아래로는 뭇신령과 합하는지라.
귀와 눈이 밝고 슬기로움은 하느님과 사람이 마찬가지지만,
사람은 세 가달[三妄]이 있는지라 혹은 아득하고,
깨닫고 움직이는 것은 사람과 만물이 마찬가지지만
사람은 세 참함[三眞]이 온전한지라 능히 깨닫느니라.”

한편 흔히들 수행이라 하면 숨공부(조식법)에 많이 경도되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삼법수행은, 금촉을 통해 정욕의 그릇인 몸을 강하게 하는 것이요, 조식을 통해 생사의 문인 기운를 고루는 것이며, 지감을 통해 길흉의 집인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다.

까닭에 삼법수행은 생명이나 연장하는 소아적 건강법이 아니라, 인간계(인간사회의 모든 관계)의 오고[五苦(生․長․肖․病․歿)]를 벗고 천리[天理(선도의 교리로 본다면 ‘返妄卽眞 會三歸一’이라 할 수 있다)]에 합쳐 깨달아 가는 것(性通功完)이라 하겠다.

민세 안재홍 또한 삼법수행에 있어, 소아적 자수련(自修鍊)과 대아적 선봉행(善奉行)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수련과 봉행은 표리본말한 것으로, 자수련에만 정진하면 소승독선(小乘獨善)에 그치므로 홍익인간의 대도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즉 홍익인간이 성통공완의 표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안재홍의 논리인데, 대아적 수행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삼법수행이 인간혁명(성통)이요 사회갱생(공완)의 방법이라는 것도 이런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서일도 지[知(性通)]와 행[行(功完)]의 일치(一致)를 주장하면서, 성통과 공완의 상관관계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능히 나의 본연의 참됨을 아는 것을 성통(性通)이라 이르고,
능히 나의 당연함을 행하는 것을 공완(功完)이라 이르니,
알고 행하지 못함이 아는 것이 아니요,
알지 못하고 행함이 행하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은 성통이 없이는 공완이 없으며, 공완이 없는 성통 또한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성통과 공완이 하나가 될 때 진정한 홍익인간구현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안재홍의 표리본말론(表裏本末論)과 일치됨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홍익인간과 삼법수행이 불가분의 관계가 되는 연유를 설명한 이맥의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에 나오는 다음의 기록을 보면 삼법수행의 목표가 더욱 분명하다.

“三神一體의 氣를 받아 이를 나누어
性․命․精(三眞-필자 註)을 얻으니,
光明을 마음대로 하고 昻然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때가 되면 감동이 일어나니 道가 이에 통한다.
이것이 體가 되어 三物인 德․慧․力(三大-필자 註)을 행하고
化하여 三家인 心․氣․身(三妄-필자 註)이 되며
즐겨 三途인 感․息․觸을 채우는 이유이다.
그 중요함은
날마다 在世理化하고 고요히 境途(三法-필자 註)를 닦아
弘益人間함을 간절히 생각함에 있다.”

아무튼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사대신기[四大神機(見․聞․知․行)]가 발(發)하여,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見神機), 하늘과 자연과 인간이 소리교감을 할 수 있으며(聞神機), 하늘과 땅의 질서를 알 수 있음(知神機)은 물론, 속세의 힘을 넘어 하늘 능력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行神機)

안재홍은 이 사대신기를 원(圓)․진(眞)․미(美)․선(善)과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원은 백[百(온)]으로써
구전(俱全)․원융(圓融)의 의미로 온전하게 보는(見神機) 것이요, 진은 천[千(즈믄․참)]으로써
충실부만(充實溥滿)의 뜻으로 참(즈믈)되게 듣는(聞神機) 것이며, 미는 만[萬(골)]으로써
균제(均齊)․조화(調和)를 나타내는 것으로 고루(골) 아는(知神機) 것임과 함께,
선은 억[億(쟐)]로써
최고의 경지까지 가는 일단(一段)의 신시원(新始元)을 말하는 것으로 잘(쟐) 사는(行神機)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런 논리로 본다면, 온전히 보기(圓見)․참되게 듣기(眞聞)․고루 알기(美知)․잘 살기(善行)를 하면 홍익인간적 삶이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쉽고 상식적인 삶을 행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수행이 전제가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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