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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일 2006-10-02 오후 3:54:44 조 회 수 1831
제 목 삼법수행의 방법
내 용
삼법수행의 방법론은「삼일신고」‘진리훈’에 토대를 둔다.

「삼일신고」‘진리훈’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받은 성(性)․명(命)․정(精)의 세 참함[三眞]을, 육신의 탈을 쓰며 나타나는 심(心)․기(氣)․신(身)의 세 가달[三妄]에 함몰되지 않고 온전히 하여, 성품을 트고 공적을 마침으로 얻어지는 신인합일․천인일여의 경지로 들어가는 가르침을 적은 글이다.

나철의 제자인 서일이 그의 「회삼경」에서, 삼진(三眞)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삼망(三妄)을 떨치는 방법을 천운(天雲)․화풍(火風)․자철(磁鐵)에 비유하여,

“心은 性에 의지함이 하늘에 구름 같으니
하늘이 비이매 구름이 날치[騰]고,
氣는 命에 의지함이 불에 바람 같으니
불이 뜨거우매 바람이 빠르[驟]고,
身은 精에 의지함이 자석에 무쇠 같으니
자석이 굳세면 무쇠가 녹느니라.”

고 심평(心平-天曠)․기화(氣和-火烈)․신강(身康-磁强)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서일은 또한 마음이 평안(心平)하면 안과 밖의 헤아림이 같아지고, 기운이 고루면(氣和) 나고 듦이 일정해지며, 몸이 강해지면(身康) 겉과 속이 균형을 이룬다고 소개함으로써, 가달을 물리치고 참을 지킬 수 있는 방법론이 바로 선도의 삼법수행임을 알려 주고 있다.

만물 중에 인간만이 하늘의 삼진(세 참함 - 性․命․精)을 옹글게 받는 존재로써, 육신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삼망(세 거짓 - 心․氣․身)을 돌이켜 참으로 나아감이 진정한 진리의 길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을 뉘우쳐 참된 성품을 보는 것이 지감법(止感法)이요, 기운를 바로 하여 참된 목숨을 얻는 것이 조식법(調息法)이며, 몸을 바꾸어 참된 정기을 가꾸는 것이 금촉법(禁觸法)이다. 신교의 삼법수행이란 이 세 가지의 수행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역시 삼위일체적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삼일신고」‘진리훈’에 나타나는 가달[妄] 십팔경(十八境-열여덟 경지)을 벗어나는 방법은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느낌 지경 여섯[喜․懼․哀․怒․貪․厭]과 숨쉼 지경 여섯[芬․爛․寒․熱․震․濕], 그리고 부딪힘의 여섯 지경[聲․色․臭․味․淫․抵]을, 그침[止]․고룸[調]․금함[禁]의 방법으로 물리치는 것을 말한다. 서일이 제시하는 다음의 구체적 방법 설명을 참고할 만하다.

“정성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기뻐하되 얼굴빛에 나타내지 아니하며
성내되 기운을 부리지 아니하며
두려워하되 겁내지 아니하며
슬퍼하되 몸을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탐하되 염치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싫어하되 뜻을 게으르게 하지 아니하니,
이것이 지감법(止感法)이다.

풀과 나무의 기운은 향기로워 시원하고
숯과 송장[屍]의 기운은 더러워서 썩으며
번개의 기운은 급하여 줄어들며
비의 기운은 느려서 새며
찬 기운은 능히 독하고 모질며
더운 기운은 능히 마르고 답답하게 하니,
이 여섯 가지는 하나도 없을 수 없으며 다 갖추어 있는지라,
심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기운을 흐리게 하여
도리어 그 해로움을 받게 되므로,
밝은 눈은 이것을 살피어 능히 삼가고 조절하니,
이것이 조식법(調息法)이다.

교묘한 말이 귀에 들리지 아니함은 나의 귀 밝음을 생각함이요
아첨하는 빛을 눈에 접하지 아니함은 나의 밝음을 막을까 두려워함이요
입에 시원한 맛을 들이지 아니함은 병을 삼감이요
코에 비린 냄새의 기운을 맡지 아니함은 더러움을 막음에서요
음란한 욕심을 절제함은 그 몸을 사랑하는 까닭이요
살에 닿음을 미워함은 그 몸을 보호하는 까닭이니,
이것이 금촉법(禁觸法)이다.”

특히 신교의 지감법은 불교의 명심견성(明心見性)과 통하고, 조식법은 도교의 양기연성(養氣鍊成)과 부합하며, 금촉법은 유교의 수신솔성(修身率性)과 일치하는 것으로, 신교수행을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이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삼법수행을 접화군생(接化群生)의 도(道)라고도 하는 까닭은, 신교의 삼법수행이 소아적 비결이 아닌 대아적 비방으로써, 홍익인간을 통한 신인합일(神人合一)․천인일여(天人一如)․인물불이(人物不二)의 경지를 통한 신과 물질과 인간의 조화적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서일의 「회삼경」에 나오는 다음의 삼법일묘(三法一妙)에 관한 풀이가 이를 뒷받침한다.

“고요히 꺼짐[寂滅]을 구함은 마음을 밝혀 성품을 구함에 있고,
날아오름[飛昇]을 구함은 기운을 길러 성품을 단련함에 있고,
크게 같음[大同]을 구함은 몸을 닦아 성품을 거느림에 있느니라.”

여기에서의 적멸(寂滅)은 불가에서 말하는 열반(涅槃)의 법을 일컫는 것이고, 비승(飛昇)은 도가에서 내세우는 우화(羽化)의 이치를 표현한 것이며, 대동(大同)은 유가에서 추구하는 치평(治平)의 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수행적 측면에서도 우리 고유의 신교가 유․불․선 삼교합일의 묘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을 근거로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견성(見性)하기 위하여는 청정(淸淨 - 불교에서 마음의 번뇌를 떨쳐 버리는 것)에 도달해 막힘이 없어야 하며, 연성(鍊性)하기 위해서는 희이(希夷 - 도교에서 듣고 보지 않는 것)를 초월하여 저절로 되어야 하며, 솔성(率性)을 위하여는 중화(中和 - 유교에서 道와 德에 통달하는 것)에 이르되 펴지 않는 것이 성통의 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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