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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일 2006-10-02 오후 3:47:39 조 회 수 1632
제 목 삼법수행의 정체성
내 용
정(精)․기(氣)․신(神)에 근원을 둔 중국 내단사상(內丹思想)은, 중국 초기 도교(道敎)로부터 시작된 ‘기(氣)와 도(道)는 일기(一氣)’라는 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도덕경』에 나타나는 희(希)․이(夷)․미(微)나, 『여씨춘추』의 형(形)․정(精)․기(氣), 그리고 『회남자』에 기록된 형(形)․기(氣)․신(神) 등이 정․기․신의 원형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정․기․신이 도교의 내단적 수련원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당말․송초의 시기다. 이 시대에는 외단에 대한 비판과 내단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즉 정․기․신은 중국 도교에서 말하는 삼보(三寶)로서, 인간 삶의 기본을 이루는 요소로 이해된다. 따라서 인간에 정․기․신에 형(形)이 의존하고 명(命)이 부리며 생(生)이 의탁하므로, 정․기․신이야말로 선도에 드는 참된 약물이라고까지 강조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대부분의 수행도 중국 도교에 거론된 정․기․신의 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나타난 내단수련이라는 점이다.

조선조의 문헌들 중 수행 혹은 양생과 관련된 수많은 서책들, 즉 김시습의 『잡저(雜著)』, 정북창의 『용호결(龍虎訣)』, 한무외의 『해동전도록』「단서구결(丹書口訣)」「단가별지구결(丹家別旨口訣)」, 허준의 『동의보감』, 곽재우의 『양심요결(養心要訣)』, 허균의 『한정록(閑情錄)』, 이수광의 『지봉유설』, 권극중의 『참동계주해』, 홍만선의 『산림경제』, 홍만종의 『순오지』『해동이적』, 서명응의 『참동고(參同攷)』, 서유구의 『보양지(葆養志)』,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강헌규의 『주역참동계연설』 등이 모두 정․기․신을 토대로 한 수행과 양생을 말하고 있다.
또한 작자 미상의 『직지경(直指經)』『중묘문(中錨門)』(17C 이후 저술)이나, 1920년대에 저술된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등도 이러한 정․기․신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불어 정․기․신에 대한 삼단전(三丹田) 대응의식도 중국 도교의 가치와 가까운 것으로써, 『종여전도집[鍾呂傳道集(論還丹)]』에서 기인한 것이다. 조선조 작자 미상의 『직지경(三丹田工夫)』에서도 《『종려전도록(논환단)』을 인용․답습하여 “정구(精區)는 하단전, 기부(氣府)는 중단전, 신사(神舍)는 상단전”이라는 논리로 연결되고 있으며, 『동의보감(形身)』에서도 『선경(仙經)』의 말을 인용하여 “뇌(腦)는 수해(隨海)로서 상단전이요, 심(心)은 강궁(絳宮)으로서 중단전이요, 배꼽 아래 삼촌(三寸)은 하단전이다. 하단전은 정부(精府), 중단전은 신부(神府), 상단전은 기부(氣府)”라고 하면서, 하단전에 모아지는 정은 기로 변하여 정기의 통로인 미려(尾閭)․녹로[轆轤(夾脊)]․옥침(玉枕)의 삼관(三關)을 뚫고 상단전의 이환(泥丸)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이 충만하면 기가 장해지고 기가 장해지면 신이 밝아진다는 ‘정충기장신명’의 원리 역시 정․기․신의 운용 내에서 존재한다 할 수 있다.

더욱이 정․기․신의 수행 윈리는 중국 도교에서 기인한다는 것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 고유의 수행과는 거리가 있다.

먼저 그 목적에서 홍익인간인[弘益人間人(性通功完者)]를 완성으로 하는 우리의 대아적 삼법수행과는 달리, 소아적 신선이나 불로장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또한 삼법(止感法․調息法․禁觸法)의 수행원리가 우리의 수행원리라면, 중국 정․기․신의 수행은 형식상 삼원론적 수행인 듯하나 성명쌍수(性命雙修)의 이원론적 수행에 바탕을 둔다.

더욱이 중국의 정․기․신 수행은 우리의 삼법 중에 조식법의 범주에 국한된 것으로, 지감법(기쁨․두려움․슬픔․노여움․탐함․싫어함)이나 금촉법(소리․빛깔․냄새․맛․음탕․살닿음)에 대해서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 삼법수행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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