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관리자 email gukhak@gukhak.org
작 성 일 2007-08-24 오후 1:07:40 조 회 수 1541
제 목 고구려의 수행
내 용
고구려 동명왕의 신하였던 극재사(克再思)가 전했다는〈삼일신고독법(三一神誥讀法)〉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마의 극재사가 이르기를, 아! 우리 믿는 무리들은 반드시《삼일신고》를 읽되, 깨끗한 방을 정하여 진리도를 벽에 걸고 손 씻고 몸을 깨끗이 하며 복장을 바로 하고 파․마늘과 술을 금하며 단향목을 피우고 단정히 꿇어앉아 하느님께 반성과 기원, 다짐을 하고 모든 사특한 생각을 끊고 366알의 단주(檀珠)를 쥐고 한마음으로 읽되 본문 366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주에 맞춰 일관되게 하라.
읽기를 3만 번에 이르면 재앙과 액운이 차츰 사라지고, 7만 번이면 질병이 침노하지 못하고, 10만 번이면 총칼을 능히 피하고, 30만 번이면 새와 짐승이 순종하며, 70만 번이면 사람과 귀신이 모두 두려워하고, 1백만 번이면 신령과 선관들이 앞을 인도하고, 366만 번이면 몸에 있는 366뼈가 새로워지고 366혈로 기운이 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366도수에 맞아 들어가, 괴로움을 떠나고 즐거움에 나아가게 될 것이니, 그 신묘함을 이루 다 어찌 적으리요.
만일 입으로만 외고 마음은 어긋나 사특한 생각을 일으켜 함부로 함이 있으면, 비록 억만 번 읽을지라도 이는 마치 바다에 들어가 범을 잡으려 함과 같아 마침내 성공하지 못하고 도리어 수명과 복록이 줄게 되며 재앙과 화가 곧 이르고 그대로 괴롭고 어두운 누리에 떨어져 다시는 빠져 나올 방도가 없으리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랴. 애쓰고 힘쓸지어다

이 독법은《삼일신고》를 정독하는 방법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공효(功效), 그리고 참된 정성을 통한 봉독(奉讀)의 중요성을 적은 것이다. 물론 여기에 표현된 공효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종교적인 문제로 돌릴 수밖에 없다. 모든 종교에서의 주문(呪文)이나 독경(讀經)은, 찬송과 더불어 일반인의 신앙경험을 위한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서 삼수의 완성수인 삼백 육십 육에 대한 오묘함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삼백 육십 육이라는 숫자는, 단군사화에 등장하는 삼백 육십 여사와 동일한 상징의미로, 단순한 수합(數合)을 넘어 ‘질서의 완성’․‘조화의 실현’․‘이상향 구현’․‘수행의 완성’이라는 종교사상적 가치와 통하는 말이다. 즉 삼백 육십 육을 한 글자로 표현한 것이 배달민족 진리의 존재태인 ‘한’이요, 단군 사화에 등장하는 ‘홍익인간’이며,《삼일신고》〈진리훈〉에 나타나는 ‘성통공완(性通功完)’이 바로 그것이다. 까닭에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이도여치(以道與治)’의 가치 또한, 수리적 상징으로 보면 이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당 시대에 추구하고자 했던 삼신신앙의 공효요 실현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더욱이 극재사라는 인물이《삼국사기》에서 고주몽을 돕는 삼인(三人:再思․武骨․黙居) 중의 한사람으로, 고주몽이 ‘극(克)’이라는 성까지 붙여주었던 인물임을 상기해 본다면, 고구려 입국정신이 삼신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다음 기록이 더욱 수긍 간다.

“동명성왕께서, 본(삼신신앙-편집자주) 교문(敎門)의 어진 선비인 오이․마리․협부를 거느리고 엄호수를 건너, 본 교문이 열린 지 2,297년에 고구려를 세우셨다. 본시 동명성왕께서는 임금의 높은 성덕으로 문무를 겸비하시어, 겨레의 쇠퇴분열상을 근심하시고 겨레를 일으키려는 뜻으로 본 종교를 받들고 장려하시니……”(《단군교오대종지서》)

이렇게 보면, 세간에 비전되어 오는 신교사서들과, 기존 사료 간의 정황상의 유사함도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자료의 부전(不傳)으로 허덕이는 우리 학계에, 고구려사상사나 한국사상사에 대한 향후 연구에 있어, 다양한 시각과 방법의 필요성을 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사상사 연구는, 역사연구에서 중시하는 자료의 서지학적 검증 이상으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살아있는 가치(비록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와 동떨어져선 안 된다는 점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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