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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일 2007-08-08 오후 2:19:30 조 회 수 1737
제 목 [종사상] 白圃 徐 一의 생애와 사상(백포 서일의 생애와 사상)
내 용
김동환(국학연구소 연구원)


Ⅰ. 머리말

금세기 한국사의 걸출한 인물들을 꼽는다면 수없이 많다. 일제치하만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평가된 인물들이 부지기수다. 그 중에서도 백포 서 일은 일제하 짧은 생을 사는 동안에 종교․철학․교육․무장투쟁 등 여러 방면에서 실로 기적에 가까운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포 서 일에 대한 집중적 인물연구는 해방 후 지금까지 전무한 상태였다. 다만 무장독립투쟁분야 연구에 있어,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와 관련하여 간접적으로 언급된 것이 다소간 있지마는 이것도 그의 삶에 근본이 되는 사상적 측면에서의 접근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도 김좌진이나 이범석 등의 명성에 덮혀, 그들을 통솔했던 서 일의 이름이 일반인들에게는 그 이름마저 생소한 상태다.
인간 행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행동실천의 바탕이 되는, 그 개인의 가치관, 즉 정신이다. 이점을 고려한다면 백포 서 일에 대한 인물 접근에서 정신적 측면을 간과한 행동적 방면에서만의 접근은, 체(體)를 모르고 용(用)만에 집착하는 이치로써, 본질을 외면한 채 현상구명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연 백포 서 일이 수많은 독립군들을 통솔하던 용기와 지혜의 바탕은 무엇이며, 그리고 종교적 수행․연구 속에서도 무장투쟁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수전병행(修戰竝行)의 삶의 토대는 무엇인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바로 그의 사상에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백포 서 일에 대한 생애를 살핌에 있어 사상형성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고자 하며, 특히 그의 사상을 몇 방면으로 나누어 중점적으로 분석해 봄으로써, 백포 서 일이 단지 독립군 지도자로서만이 아니라, 대종교라는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정신적 지도자였다는 점을 밝혀 보고자 한다.



Ⅱ. 백포 서 일의 생애

1. 대종교와 중광단 조직
서 일의 초명(初名)은 기학(夔學)으로 백포(白圃)는 호(號)이며, 당호(堂號)는 삼혜당(三兮堂)이다. 그는 1881년 2월 26일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원군(慶源郡) 안농면(安農面) 금희동(金熙洞)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주로 한학(漢學)을 많이 접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당시대 대부분의 지식인들처럼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기본으로 한 유교적 경험으로써, 그의 어린 시절 사상형성에 중요한 토대로 작용했을 것이며 그의 해박한 유교적 지식도 이 때의 한학수학(漢學修學)이 바탕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백포 서 일이 본격적인 다양한 학문에 접하게 된 시기는 함일사범학교(咸一師範學校) 재학시절과 1902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0년간 지역사회에서 계몽운동과 교육사업에 헌신하던 때이다. 그가 어떤 분야를 어떻게 공부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후일 그가 남긴 저술에 언급되는 유(儒)․불(佛)․선(仙)에 대한 달견(達見)과 서양종교 그리고 서양철학에 대한 심오한 비교언급을 볼 때, 이 시기에 동․서양 학문에 대한 체계적인 경험을 한 것이 확실하다.
백포 서 일이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선 것은 1911년 이후라 할 수 있다. 그는 만주로 건너온 대종교인들을 중심으로 1911년 본격적인 항일단체인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하여 31세의 나이로 단장에 추대된다. 중광단이 출발한 지역은 당시 대종교의 주요 거점이었던 왕청현(汪淸縣)으로, 대종교에서는 1910년 시교사(施敎師) 박창익(朴昌益)을 파견하여 포교의 거점을 잡은 곳이다. 이 시기에 이미 만주로 이주해 살던 한인(韓人)들의 수가 20만 명이 넘었고 이 중 많은 인구가 이미 대종교를 직․간접적으로 신봉하게 된다. 대종교의 중광 교조인 홍암 나 철이 1911년부터 직접 만주포교에 나서 1915년 경성(京城)으로 돌아오기까지 근 6년간을 포교에 노력한 것도 대종교 신앙을 통한 독립의식의 고취를 위한 것이었다. 아무튼 당시 중광단에 가담한 인물들은 대부분 대종교도들로서, 특히 서 일을 비롯한 백 순(白純)․현천묵(玄天黙)․박찬익(朴贊翊)․계 화(桂和)․김병덕(金秉德-金星)․채 오(蔡五) 등 중광단의 지도층은 대종교의 중심을 이루던 인물들이다.
한편 중광단이라는 명칭 또한 과거 우리 고유의 단군신앙에 대한 부활을 의미하는 대종교의 ‘중광(重光; 교문이 다시 열림)’에서 따온 명칭이다. 이렇게 볼 때 중광단이라는 단체는 독립운동단체 이전에 신앙으로 무장된 철저한 정신집단으로서, 후일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이나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一名 북로군정서)로 발전해 가면서도 그 정신은 그대로 계승되었다.
이렇듯 백포 서 일은 대종교를 접하고 그 정신으로 중광단을 만드는데, 그러한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은 홍암 나 철이라는 인물과의 만남이요, 《삼일신고(三一神誥)》와 《신리대전(神理大全)》이라는 책을 경험하면서다. 《삼일신고》는 대종교 중광 교조인 홍암 나 철이 대종교를 중광하기 이전인 1905년 11월 30일, 우연히 두암(頭岩) 백전(伯全)이라는 노인을 만나 단군교(檀君敎)에 입교하고 받은 비전(秘典)으로서 후일 대종교의 주요 경전(經典)이 되는 책이다. 또한 《신리대전》은 홍암 나 철이 《삼일신고》에 나타나는 신리(神理)를 신위(神位)․신도(神道)․신인(神人)․신교(神敎)로 나누어 구명한 책이다.
먼저 서 일이 나 철을 만난 때가 언제였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추측컨대 1911년 7월, 즉 서 일이 중광단을 조직하여 계 화․백 순․박찬익 등과 함께 화룡현 청파호(靑坡湖) 등지에서 대종교 포교활동에 전념하던 시기와 홍암 나 철이 같은 해 7월 21일 화룡현 청파호에 도착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그 시기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백포 서 일은 대종교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삼일(三一)의 원리야말로 백봉신사(白峯神師)께서 이를 홍암신형(弘巖神兄)에게 전하여준 것으로 밝히고, 나같이 갖지 못한 사람으로서도 또한 다행하게 홍암신형께 친히 가르치심을 받아 더불어 들음이 있었음에 감격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서 일이 홍암 나 철을 만나 대종교의 심오한 진리에 대해 눈을 떴음을 암시 받을 수 있다.
까닭에 그는 《삼일신고》와 함께 나 철이 직접 저술한《신리대전》에 대해 지극한 존경의 예를 감추지 않았다. 사실 백포 서 일의 저술인 《회삼경(會三經)》《삼일신고강의(三一神誥講義)》《구변도설(九變圖說)》《진리도설(眞理圖說)》《삼문일답(三問一答)》《오대종지강연(五大宗旨講演)》등은 앞의 두 책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과 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대종교의 《삼일신고》야말로 천지만물의 온갖 이치를 밝힘은 물론 인간의 성품을 트고 공적(功績)을 마치는 묘법(妙法)이 담겨 있는 이치의 뿌리로 규정하면서 또한《신리대전》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백포 서 일이 본격적인 독립운동단체인 중광단을 조직하는 정신적 배경이 대종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대종교를 접하면서 그의 삶의 가치가 새롭게 전환된다. 그것은 그가 평생을 대종교의 정신 속에서 수도하는 종교인의 자세로 살았고 그가 남긴 저술들이 모두 대종교의 교리를 궁구(窮究)하는 내용이라는 점도 이를 증명한다.

2. 修戰竝行의 삶과 최후
백포 서 일은 대종교를 신봉한 지 짧은 시간만에 종교적 깨달음을 얻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5년도 안되어서 대종교의 최고 교질(敎秩)인 사교(司敎)로 초승(超昇)되는 초인적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는 陣中에서도 수도실을 따로 마련하여 항상 원도(願禱)와 수행, 그리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수전병행(修戰竝行)의 삶으로 일관했다. 심지어는 전투의 와중에서도 대종교 깨달음의 상징인 단주(檀珠)를 늘 목에 걸고 있었다.
그가 일찍이 중광단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면서부터 보여준 이러한 삶은 대종교의 투쟁목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대종교의 독립운동은 일제로부터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다는 국권회복의 차원을 넘어서 대종교의 이상국가(理想國家)인 배달국토(倍達國土)를 지상에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백포 서 일의 독립운동 또한 단순히 대일항전을 통한 민족독립을 넘어서 대종교의 이상국가 건설이라는 종교적 완성과도 직결된다. 이러한 목표완성을 위해서는 조국광복을 위한 투철한 투쟁정신과 더불어 종교적 완성을 위한 수행․연구가 반드시 필요했다. 따라서 백포 서 일의 수전병행(修戰竝行)의 행동철학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행동가치는 중광단의 조직에서부터 투철하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광단 명칭의 종교적 배경이나, 그 지도층을 위시한 구성원 대부분이 대종교인이었다는 점, 또한 중광단에서 일차적으로 시도한 것이 대종교 포교를 통한 민족의식 함양이었다는 것 등이 중광단의 종교적 일체감과 대일항쟁이라는 양면적 목표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일을 비롯한 중광단의 중심인물들은 각기 화룡현(和龍縣)․왕청현(汪淸縣)․연길현(延吉縣) 등로 나뉘어 포교와 더불어 독립운동의 거점을 확산시켜 갔다. 1914년 5월 13일 화룡현 청파호에 대종교총본사(大倧敎總本司)를 설치 할 수 있었던 것도, 서 일을 중심으로 한 중광단의 이러한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한편 서 일은 수전병행의 실천방편으로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직접 설립한 명동학교(明東學校)를 위시하여 중광단에서 설치한 교육기관만도 동일학교(東一學校)․청일학교(靑一學校)․학성학교(學成學校) 등 10여 개를 헤아린다. 서 일은 대종교와 독립운동, 그리고 민족교육이라는 세 요소를 일치시키면서 수전병행(修戰竝行)의 극대화를 도모해 갔던 것이다.
여기서 중광단과 연관하여 주목을 끄는 것은 동원당(東圓黨)이라는 비밀단체다. 그 동안 대종교의 비밀결사인 귀일당(歸一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있으나, 동원당에 대해서는 대종교의 중심인물로서 대한정의단과 북로군정서의 핵심이었던 이홍래(李鴻來)의 가출옥문서와 1925년 4월 6일 청진지방법원 판결서에서 처음으로 그 실체가 나타난다. 동원당은 백포 서 일을 중심으로 수명의 동지가 협의하여 1912년 음력 8월 연길현 삼도구(三道溝) 청파호(靑坡湖)에서 조직된 단체로써, 독립운동을 완수하기 위한 체계적 활동을 결정하고 이를 지도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이 단체가 언제까지 존속했고 귀일당과 동체이명(同體異名)인지의여부 또한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동원당 또한 서 일이 수전병행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만들어 놓은 비밀결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추측의 뒷받침은 서 일이 1919년 연길현 국자가에서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자유공단(自由公團)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는데 단원이 15,000명에 이른다는 내용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중광단은 발전적 도약을 위해 1919년 5월 일부 공교도(孔敎徒)들과 연합하여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을 조직, 변화를 모색한다. 그러나 정체(政體)의 이견으로 공교도의 대표적 인물인 김성극이 축출되면서 순수 대종교도를 중심으로 정비되는 것이다. 즉 당시 공교도들은 보황주의(保皇主義)를 내세웠고 대종교인들은 대종교의 교의(敎義)인 홍익인간(弘益人間)속에 배태되어 있는 인본주의적 가치와 가까운 공화주의(共和主義)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결별은 백포 서 일이 중광단 이후부터 행동화시켜 오던 수전병행의 목표의식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정의단은 중광단과 마찬가지로 대종교 정신을 토대로 한 무장투쟁을 추구했다. 따라서 단장(團長)인 서 일은 독립군정회(獨立軍政會)라는 무장조직을 정의단 내에 따로 설치하고 본격적인 무장혈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또한 〈일민보(一民報)〉와 〈신국보(新國報)〉라는 순수한글신문을 발행하여 재만동포(在滿同胞)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여기서도 주목되는 것은 순수한글 사용의 정신적 배경이 대종교 정신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글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주시경이나 지석영․김두봉 등 한글개척의 선각자들이 모두 대종교도로서, 대종교의 정신에 의해 한글사랑을 실천했다는 것과 연결된다.
백포 서 일은 대한정의단에 대한 정비와 더불어 왕청현을 중심으로, 대종교 정신을 통한 민중적 기반 또한 확고히 다져 갔다. 이러한 토대 위에, 당시 길림군정사(吉林軍政司)에 소속되어 있던 김좌진․조성환․박찬익․박성태 등 군사전략에 밝은 인물들을 영입한다. 이들 또한 대종교의 중심인물들로서 대한정의단의 약점이었던 체계적 무장투쟁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가들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태동하는 것이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一名 北路軍政署)다.
북로군정서는 중앙조직 체계를 총재부(總裁部)와 사령부(司令部)로 나누었는데, 총재부는 주로 대한정의단의 중심인물들이었으며 사령부는 주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양부(兩部)의 대다수 인물들이 대종교도였다는 점을 본다면, 양부(兩部)체제는 정신(精神)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총재부와 행동(行動)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사령부의 체제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백포 서 일의 수전병행(修戰竝行)의 가치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조직체계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북로군정서 관할 구역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대종교 신자들이었던 까닭에 모연대(募捐隊)를 통한 군자금의 징수와 모금이 훨씬 수월했다. 즉 그들이 내는 세금의 의미는 곧 종교적 성금이요, 독립을 위한 군자금으로써 수전병행의 가치와 일치하는 것이다. 까닭에 북로군정서 연성대장(硏成隊長)으로서 청산리전투에 참가했던 이범석(李範奭)은 당시 만주 교포의 7할 이상이 대종교도였고, 대종교의 확장은 독립운동의 확장이었으므로 청산리전쟁의 승리 또한 대종교라는 신앙의 힘과 민족정신에 불타는 신념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독립군들은 대부분이 대종교의 신앙에 뭉쳐서 파벌이나 사리잡념이 없었고 광명정대했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독립군들은 10월 상달이 되면 돌로 제단을 쌓아, 어려운 재정에도 불구하고 돼지와 소를 잡아 제천보본(祭天報本)하고 우리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빌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더라도 서 일의 수전병행(修戰竝行)의 행동가치는 북로군정서에도 그대로 계승되면서 청산리전투의 승리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북로군정서의 총재로부터 말단사병, 심지어는 보급을 맡은 민간인들까지도 대종교 정신으로 무장된 이념집단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청산리전투에서 대패한 일제는, 그들이 당한 수모를 대종교도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로 앙갚음했는데 당시 희생당한 대종교도들만도 수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서 일은 동포들의 희생을 최소화시킨다는 계획 하에 북로군정서를 소만(蘇滿) 국경지역인 밀산으로 이동시켜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등 10여개의 단체를 통합하여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고 총재로 추대된다. 그러나 ‘자유시사변(自由市事變)’으로 인해 막대한 타격을 입고, 밀산에서 재기를 도모하며 군사훈련에 열중하던 1921년 8월 26일 수백 명의 토비(土匪)들이 야습(夜襲)하여 살인, 방화 그리고 약탈을 자행한다. 이로 인해 진중이 초토화되고 훈련 중이던 수많은 청년들이 희생당하니, 한 종단의 최고 간부로서 그리고 독립군을 지휘하는 총수로서 수전병행(修戰竝行)의 비장한 각오를 새기는 것이다.
즉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선택이었다. 서 일은 그의 스승인 홍암 나 철이 순명삼조(殉命三條)를 남기고 1916년 음력 8월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를 마음에 새기면서, 마침내 1921년 8월 27일 다음과 같은 홍암 유서(遺書) 중의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생을 마감한다.

굿것이 수파람하고 도깨비 뛰노니 하늘․땅의 정기빛이 어두우며 배암이 먹고 도야지 뛰어 가니 사람․겨레의 피․고기가 번지르 하도다. 날이 저물고 길이 궁한데 인간이 어디메오.

이렇게 백포 서 일은 41세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은 자신의 죽음으로, 대종교의 한 단계 도약을 도모하고 흩어진 독립진영에 대한 재기의 각성을 심어 주고자하는 수전병행(修戰竝行)의 가치를 최후까지 보여준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죽을 때와 죽음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았던 인물이었다. 다음과 같은 그의 철학이 이를 대변해 준다.

마땅히 복되지 않을 때 복되면 이것은 도리어 허물이요, 마땅히 살아야 하지 않을 때 오래 살면 이것은 도리어 욕됨이요, 마땅히 부귀하지 않을 때 부귀하면 이것은 도리어 부끄러움이다.


Ⅲ. 백포 서 일의 사상

백포 서 일의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회삼경(會三經)》《삼일신고강의(三一神誥講義)》《구변도설(九變圖說)》《진리도설(眞理圖說)》《오대종지강연(五大宗旨講演)》《삼문일답(三問一答)》등을 들 수 있다.
《회삼경》은 《삼일신고》‘진리훈(眞理訓)’을 대종교의 삼일원리에 맞춰 과학적으로 증명한 글이다. 서 일은 이 글에서 유(儒)․불(佛)․선(仙) 삼교(三敎)의 원리인 불교의 묘법(妙法), 유교의 역학(易學), 그리고 도교의 현리(玄理)를 종합하여 삼신(三神)․삼철(三哲)․삼망(三妄)․삼도(三途)․삼아(三我)․삼륜(三倫)․삼계(三界)․삼회(三會)․귀일(歸一) 등 아홉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구변도설》은 대종교의 상징인 원(圓)․방(方)․각(角) 삼묘(三妙)를 대종교 교리의 삼덕(三德)으로 통하는 성(性)․명(命)․정(精)의 이치와 연관시켜 그림을 통하여 해설한 것이다. 또한 《진리도설》은 천지인삼극(天地人三極)의 원리를 생(生)․화(化)․성(成)의 변칙에 의하여 가달[妄]을 돌이켜 참[眞]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밝힌 글이다.
한편 《오대종지강연》은 1909년 대종교의 중광 직후, 홍암 나 철이 발포(發布)한 오대종지(五大宗旨; 敬奉天神․誠修靈性․愛合種族․靜求利福․勤務産業)를 종교철학적 측면에서 강해하고 있다.
끝으로 《삼문일답》은 삼사생(三思生)과 일의자(一意子)라는 두 사람의 문답형식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이 글에서 서 일은, 대종교의 삼일철학을 토대로 상권에서는 서언과 함께 천론(天論)․신론(神論)․천궁론(天宮論)․세계론(世界論)에 대해 구명하고 하권에서는 진리론(眞理論) 네 부분에 대한 이치 설명과 결론을 담고 있다. 특히 《삼문일답》은 다른 종교의 교리와 대종교의 삼일사상을 비교강론(比較講論)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안타깝게도 서언만 남고 대종교의 임오교변(壬午敎變; 1942.11)당시 모두 분실하였다.
이렇듯 백포 서 일의 사상을 살핌에 있어 인간관(人間觀)․윤리관(倫理觀)․인류관(人類觀) 등 다방면에서 살펴 볼 수 있겠지마는, 이 글에서는 그의 저술을 토대로 신관(神觀)․내세관(來世觀)․수행관(修行觀)적 측면에서 중점 고찰하고자 한다.

1. 신관(神觀)
백포 서 일에 있어서 신(神)의 문제는 철저하게 《삼일신고》와 《신리대전》의 연장선상 위에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신관 또한 보편적이면서도 상생적(相生的)이다.
먼저 그는 대종교의 신(神)이 천지창조주로서의 하느님임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하느님은 하늘의 임자시니 덕이 넓으며, 슬기가 밝으며, 힘이 굳건하시다. 얼굴없이 만드시며, 말씀없이 가르치시며, 행함없이 다스리시니라. 크도다! 하느님의 도여! 하나로 셋이 되니 몸[體]을 함에는 더 없는 위에 이르시며, 씀[用]에 있어 끝없이 다하시니라.

이것은 조물주의 삼대권능(三大權能)인 덕(德)․혜(慧)․력(力)을 바탕으로 조화(造化)․교화(敎化)․치화(治化)를 주관하는 삼신일체(三神一體) 하느님 자리를 설명한 것으로, 체(體-一)와 용(用-三)의 원리에 의하여 변함없는 근본과 무궁한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삼대권능을 가진 절대자로서의 신(神)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서도 살필 수 있다.

조화의 비롯도 하느님(한배)이시며, 교화의 비롯도 하느님이시며, 치화의 비롯도 하느님이시니 가로로는 하늘의 위․아래 및 네 녘[四方]과 세로로는 천만고의 시간에 무엇이든지 우리 하느님의 먼저는 없나니라.

나아가서 서 일은 조(造)․교(敎)․치(治)의 권능을 각기 다섯 갈래로 형상화하여 하느님의 쓰임[用]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

이치[理]는 없음을 좇아 일어나고 자취[迹]는 있음으로 인하여 나타난다. 이러므로 다섯 물건(行․翥․化․游․裁)을 마르재시어 얼굴이 있고 다섯 가르침(天․神․天宮․世界․眞理)으로 깨우치시어 말씀이 있고 다섯 일(穀․命․病․刑․善惡)을 베프시어 행함이 있느니라.

이러한 다섯 형상화가 궁극적으로, 각기 하늘의 완성수라 할 수 있는 366로 불어나면서 하느님의 능력인 조(造)․교(敎)․치(治)의 완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다섯 물건이 늘어나 366종(種)이 되고, 다섯 가르침이 늘어나 366언(言)이 되며, 다섯 일이 늘어나 366사(事)로 자리 잡는다고 밝혔다. 까닭에 삼백 예순 여섯 목숨[命]을 기르며 삼백 예순 여섯 몸[體]을 마르재며 삼백 예순 여섯 고동[機]을 돌림은 조화의 공적이 되고, 삼백 예순 여섯 뼈[骨]를 바꾸며 삼백 예순 여섯 혈(穴)에 모이며 삼백 예순 여섯 도수[度]로 합함은 교화의 공적이 되고, 삼백 예순 여섯 행실[行]을 가지며 삼백 예순 여섯 고이[德]를 쌓으며 삼백 예순 여섯 일[事]을 지음[做]은 치화의 공적이라고 말한다.

한편 서 일은 구체적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의 모습을

이(神) 길이 한 번 변하매 여섯 큼[六大]의 형상을 이루니, 이름하여 비임[空]과 더움[熱]과 울림[震]과 젖음[濕]과 추움[寒]과 굳음[固]이라. 비임은 하늘이 되고, 더움은 불이 되고, 울림은 번개가 되고, 젖음은 물이 되고, 추움은 바람이 되고, 굳음은 땅이 되니라.

라는 내용을 통하여 육대원소(六大元素)를 바탕으로 한, 만물조화의 현상을 구체화 시켜나간다. 이것은 조물주의 천지창조의 원리와도 통하는 것으로 《삼일신고》‘세계훈’에 나타나는 ‘속 불이 터지고 퍼져 바다로 변하고 육지가 되어…( 中火震盪 海幻陸遷…)’ 라는 내용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한편 서 일은 대종교의 독특한 신관(神觀)인 유일신적(唯一神的) 다신관(多神觀)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긍정하면서 나아가서는 상생적(相生的)이고도 보편적인 신관을 천명하고 있다.

구름․비․바람․우레와 해․달․별들을 차지한 신장(神將)․선관(仙官)이 모두 하느님의 부리심이며, 공자․노자․예수 같은 성철(聖哲)들도 모두 하느님의 나누심이니……

이러한 인식은 《삼일신고》‘천궁훈(天宮訓)’에 나타나는 ‘하늘은 하느님의 나라라 하늘집이 있어 온갖 착함으로 섬돌[階]하고 온갖 덕으로서 문을 삼으니, 하느님이 계시는데요 신장(神將)과 선관(仙官)들이 뫼셨[護侍]나니…(天神國 有天宮 階萬善 門萬德 一神有居 群靈諸哲 護侍…)’라는 부분과 통하는 것으로 유일신에 의해 지배되는 기능신(機能神)의 역할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또한 공자․노자․예수를 하느님의 분신으로 인식하는 것은 기성(旣成)의 종교가 배타적 종교관이 아닌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다는 만교합일(萬敎合一)의 이상(理想)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백포 서 일에 있어서의 신(神)은 절대적 주재자․창조주․무소부재의 권능자․기능신(機能神)을 부리는 주재신(主宰神)로서의 능력을 가진 삼신일체(三神一體)의 하느님이다. 또한 그 신은 배타적이 아닌 상생적이며, 폐쇄적이 아닌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체임을 알 수 있다.

2. 내세관(來世觀)
대종교의 내세관은 백포 서 일에 의해 체계화 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일신고》에 나타나는 추상적인 내세관이, 서 일의 저술인《회삼경》‘삼계(三界)’를 통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지경[界]을 신계(神界)․인계(人界)․마계(魔界) 셋으로 나누고 특히 ‘신계’와 ‘마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고 있다.

하늘은 위의 지경[上界]이 되고 마귀는 아래 지경[下界]이 되어 그 길이 서로 반대되는지라, 고로 하늘지경[神界]은 크고 마귀지경[魔界]은 작으며 하늘지경은 밝고 마귀지경은 어두우며 하늘지경은 즐겁고 마귀지경은 괴로우니라.

라고 말하면서 인계(人界)는 그 중간에 놓이어, 마계를 물리치면 신계가 가까워 지고 신계에 어두우면 마계로 떨어짐을 경고한다. 또한 그 선택에 있어 삼계유심(三界唯心)을 강조하는 다음의 일깨움이 주목된다.

착함은 무엇을 따라 나타나는고 오직 나의 마음이며, 악함은 무엇을 좇아오는고 또한 오직 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없을 때에는 하느님도 얻어 머물지 못하고 나의 마음이 없는 곳에는 마귀도 감히 이르지 못하나니라.

라는 가르침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을 중시하고 있다. 이것은 곧 내 마음이 하느님이요, 내 마음이 마귀라는 의미로서 인간 선(善)․악(惡)의 선택의지를 경계하는 것이다. 까닭에 서 일은 또 다른 저술에서도 이러한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하늘나라가 멀리 있다 이르지 말라. 나의 몸가에 둘렸나니라. 하늘마을이 밖에 있다 이르지 말라. 너희 골 속에 내려져 있느니라. 그런 즉 우리는 성품을 닦되 멀리 생각하지 말며 밖에서 찾지 말고 제 몸에 돌이키어 살필지니, 나의 몸이 곧 하늘나라요 나의 머리가 곧 하늘집이로다.

물론 백포 서 일의 이러한 인식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대종교의 삼천궁(三天宮) 사상과 직결된다 할 수 있다. 즉,

하늘집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도 있으니, 백두산 남북마루가 하느님 나라요 하느님께서 내리신 백두산이 하늘집이 되며, 사람에게도 역시 그것이 있으니 몸이 하늘나라가 되고 머리골이 곧 하늘집이니, 이 세 하늘집이 실은 하나다.

라고 하는 발해시대(渤海時代)의 국상(國相)이었던 임아상(任雅相)의 인식을 계승한 것이다.
한편 백포 서 일은 인간 선․악의 의지를 다스리는 가치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착함이 있으면 권장하고 악함이 있으면 징계하는 것은 하늘과 인간이 한 이치라고 말한다. 까닭에 인간나라에는 상(賞)․벌(罰)의 법[典]이 있고, 하늘나라에는 화(禍)․복(福)의 응보[徵]가 반드시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나아가서 하늘마을을 셋으로 나누고 마계(魔界)를 여섯 옥(獄)으로 구분하여 각기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꾸짖음이 다름을 밝히고, 양계(兩界)의 형상을 아래와 같이 설명해 간다.

세 마을은 첫째 하느님마을이요, 둘째 신장마을[靈府]이요, 셋째 선관마을[哲府]이니 하느님마을은 가운데를 차지하고 두 마을은 앞에 있어서 지극히 높고 엄숙하며 매우 아름답고 장엄하며 상서로운 빛이 뭉게뭉게 피어서 가히 이름지어 형상할 수 없나니라.
여섯 옥은 첫째 굳은옥[窂獄]이요, 둘째 굽는옥[炕獄]이요, 셋째 흔드는옥[盪獄]이요, 넷째 잠긴옥[沉獄]이요, 다섯째 떨리는옥[凌獄]이요, 여섯째 어두운옥[冥獄]이니, 굳은옥은 막히고 굽는옥은 뜨겁고 흔드는옥은 울리고 잠긴옥은 젖고 떨리는옥은 차고 어두운옥은 그윽하니, 막히므로 무릎이 눌리고 몸이 핍박되며 뜨거움으로 뼈를 사르고 기름을 태우며 울리므로 몸이 부벼지고 힘줄이 당기며 젖으므로 위장이 부어서 앓으며 추우므로 살․고기가 얼어서 터지며 그윽하므로 마음과 눈이 같이 어지러우니라.

서 일은 계속하여 현세(現世)와 내세(來世)를 몸 앞과 몸 뒤로 구분하고, 몸 앞은 ‘떠 사는 세상[浮生界]’이 되며 몸 뒤는 ‘길게 사는 세상[永生界]’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착함과 악함의 응보가 두 지경[界]으로 나뉘어 져서 빠르면 응함이 몸 앞에 있고 더디면 응함이 몸 뒤에 있으니, 몸 앞의 일은 사람이 다 보되 몸 뒤의 일은 오직 밝은이[哲人]만이 살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착하되 육신의 향락을 누리 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길게 사는 즐거움[永生樂]’이 있고, 악하되 몸에 괴로움을 요행으로 면하는 사람은 ‘길게 사는 괴로움[永生苦]’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 일은 ‘순한 일을 짓는 사람[做順事者]’만이 하늘나라 세 마을에 오를 수 있으며, ‘거스르는 일을 짓는 사람[做逆事者]’은 스스로 몸 뒤의 여섯 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순한 일[順事]과 거스르는 일[逆事]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어버이께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하며 일가․겨레와 친목함은 사랑순함[愛順]이라 이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아내에게 화순하며 고을에서 사양함은 예도순함[禮順]이라 이름하고, 스승을 공경하고 벗끼리 신뢰하며 겨레사랑을 마음에 품음은 도리순함[道順]이라 이름하니, 이것은 모두 하늘이치에 합하는 것이고 사람의 일을 다한 것이다.
아첨하고 나쁜 기운에 휩쓸려 위태로움에 떨러지려는 것을 즐겨함을 기쁜거스름[喜逆]이라 이름하고, 마구 꾸짖고 짓밟아서 사람의 외롭고 약한 것을 위협함을 두려운거스름[懼逆]이라 이름하고, 헐뜯고 이간질하여 사람의 허물없는 것을 상하게 함을 슬픈거스름[哀逆]이라 이름하고, 원망하고 마구 욕하여 사람에게 나쁜 말로 업신여김을 성낸거스름[怒逆]이라 이름하고, 속임을 좋아하고 거짓을 베풀어서 사람의 재물을 빼앗음을 탐한거스름[貪逆]이름하고 질투하고 비방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킴을 싫은거스름[厭逆]이라 이름하니, 이것은 모두 하늘이치를 어기고 물건욕심만을 따르는 것이니라.

이것은 인간이 현실 생활 속에서 선․악 선택의 의지에 따라 내세가 달라짐을 구체화한 것으로, 서 일은 하늘이치에 합하는 삶을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고 물건욕심을 따르는 것을 마귀를 섬기는 행위라고 말하면서, 하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다시금 강조한다.
또한 그의 인식세계에서는 하늘마을과 여섯 옥이 동떨어진 별개가 아니다. 즉 착한 도리[善道]를 행하면 마귀의 세상에서 곧 하늘마을을 볼 수 있고, 악업(惡業)을 쌓으면 하늘세계에서 곧 여섯 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백포 서 일은 내세의 영원한 즐거움을 얻으려면 우선하여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육신의 고통으로 벗어나 하늘즐검을 얻는 지름길이요, 가달[望]을 돌이켜 진정한 참[眞]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 모든 것이 마음의 의지 속에 작용하고 있다고 일깨워 준다.

3. 수행관(修行觀)
대종교의 수행관은 《삼일신고》‘진리훈(眞理訓)’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진리훈’에 나타나는 ‘참함을 돌이키면 신이 된다(返眞一神)’는 것이나, ‘느낌을 그치며 숨쉼을 고루고 부딪힘을 금하여 한 뜻으로 되어가, 가달을 돌이켜 참함으로 나아가 신의 고동[神機;見․聞․知․行]을 발하나니, 성품을 트고 공적을 마침이 이것이니라(止感 調息 禁觸 一意化行 返妄卽眞 發大神機 性通功完 是)’는 내용이 그것이다.
백포 서 일의 수행관 또한 ‘진리훈’의 이러한 내용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그는 인간이 육신의 몸으로 태어나면서, 가달[妄]의 굴레에 얽매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열 여덟 지경에서 헤어나지 못하므로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괴로움으로부터 인간을 건지기 위하여 신인(神人)이 친히 내려 왔음을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한 옛날 하늘사람(神人)이 나리시매, 이것을 근심하시어 삼법(三法)을 베풀어 백성을 가르치시니 그침[止]과 고룸[調]과 금함[禁]이라, 함부로 내닫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되게 하여 제가끔 바른 길을 따라서 참지경으로 돌아가게 하나니라.

이것은 열 여덟 지경의 가달[妄]을 돌이키는 방법으로 삼법[止感․調息․禁觸]이 존재함을 말한 것으로, 삼법이야말로 깨달음의 길로 향하는 최선의 길임을 강조하는데, 서 일은 또 다른 글에서도 삼법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성품을 닦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느낌을 그침[止感]과 숨쉼을 고룸[調息]과 부딪힘을 금하는 것[禁觸]이라, 선철(先哲)이 말하기를 『느낌을 그치면 마음이 평(平)하고 숨쉼을 고루면 기운이 화(和)하고 부딪힘을 금하면 몸이 편하니, 이 세 가지 법은 망적고마(妄賊苦魔)를 막는 날카로운 장기』라 하시니라.

한편 서 일은 삼법을 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즉

밝은이의 정성으로 닦음에는, 기쁨을 모습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성냄을 기운으로 부리지 않으며 두려워하되 겁내지 않으며 슬퍼하되 헐버리지 않으며 탐하나 청렴함을 상하게 하지 않으며 싫으나 뜻에 게을리 하지 않으니, 이것이 느낌을 그치게 하는 법이니라.
풀과 나무는 산소가 많고 숯과 죽엄은 탄소가 많고 추위엔 독한 병이 많고 더위엔 뜨거워 답답함이 많고 번개는 마름이 많고 비는 젖음이 많으니, 이 여섯 가지는 하나가 없든지 너무 갖추어도 옳지 않은지라, 너무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기운이 흐려서 도리어 그해를 받으니 오직 아는 사람이라야 살펴서 능히 조심하여 조절하나니, 이것이 숨쉼을 고루는 법이니라.
교활한 말을 귀에 받아들이지 않으며 아첨스런 빛을 눈에 접하지 않으며 코로 비린내를 맡지 않으며 입으로 즐거움을 탐하지 않으며 음탕하되 간악함에 이르지 않으며 다닥치되 살이 상하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부딪힘을 금하는 법이니라.

고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형평(衡平)과 균도(均度)와 절제(節制)의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더불어 이러한 방법으로 삼법을 행하면 망령된 도적과 괴로운 마귀가 모두 순화되어 좋게 되고, 길이 맑아서 흐림이 없으며, 경지가 순하여져 막힘이 없어지므로 저절로 높은 경지에 오르는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일깨운다.
또한 서 일은 삼법의 수행과정에서 몇 가지의 중요한 정신자세를 강조하는데 지속(持續)과 정성(精誠)과 천도(天道)가 그것이다.
먼저 부단한 수행이야말로 삼법을 깨우치는데 중요한 것임을 다음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아홉 길 되는 뫼[山]를 쌓다가도 한 삼태기가 적으매 공이 이그러지고, 천리 되는 길을 가다가도 한 걸음이 모자라매 목적을 이루지 못하나니, 성품을 닦음도 이와 같아서 중도(中途)에서 돌아오면 다시 막힘에 이르나니라. 다만 닦을 줄 아는 것만이 귀함이 아니라 닦음을 잘 행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움이니, 한결같은 정성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닦는 길에 나아갈지니라. 이 길에 나아가려면 한 걸음이라도 멈추는 것은 옳지 아니 하니라.

이것은 수행에 있어서 지속적인 과정의 중요함을 일깨운 것으로, 용두사미(龍頭蛇尾)의 수행을 경고하고 초지일관하는 수행의 교훈을 알리는 것이다.
다음으로 서 일은 정성어린 수행이야말로 깨달음의 근본임을 상기시키면서, 한결같은 정성으로 끊임없이 닦으면 반드시 하늘지경인 만선계(萬善階)에 올라 만덕문(萬德門)으로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정성은 곧 공덕을 이루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참정성은 능히 하늘을 느끼게 하며, 능히 새와 짐승을 길들이며, 능히 쇠와 돌을 뚫나니 본 성품을 찾으려 하는 이가 어찌 닦지 아니하랴!

라고 밝히면서, 정성이 천지를 감응시키는 힘의 원천임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한편 수행에서의 정성의 중요성은 《참전계경(叅佺戒經)》에 나타나는 다음의 구절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정성이란 도를 이룸의 전체이고 일 만듦의 큰 원천이다. 하늘의 그대로를 잊지 않음으로 그 정성을 품은 바가 곧 정성이며…(誠者 成道之全體 作事之大源也 天然不忘 其所抱之誠卽誠…)

수도하는 선비는 정성을 정성의 이치에 두고, 이를 위하여 차지게 정기를 흡수하는 고로, 비록 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달려도 한결같은 일념은 정성밖에 없다.(修道之士 存誠於誠之理 己爲糝腦洽精 故 雖萬想交迭 斷斷一念 不外乎誠)

오직 정성의 일에는 모든 신경이 합하므로 하나라도 없은 즉 정성을 이룰 수가 없다.(但於誠役 諸神聚合 無一卽不能成誠)

사람이 감동할 만한 정성이 없으면 하늘이 어떻게 감동하며, 사람이 응답할 만한 정성이 없으면 하늘이 어떻게 응답하겠는가.(人無可感之誠 天何感之 人無不應之誠 天何應之哉)

실로 정성이 없으면 수행의 처음과 끝이 없음을 일깨우는 말들로서, 서 일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지성(至誠;정성어린 수행)이면 감천(感天;하늘의 깨달음)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알려 주고 있다.
끝으로 서 일은 수행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천도(天道)를 언급한다. 이러한 이치로써 그는 사람의 성품을 하늘이 주었음을 밝히면서, 인간 또한 하늘의 길을 본받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또한 그는 하늘이 베풀고 땅이 이으니 사람의 길이 비롯되었음을 주장하고, 돌이켜 나아감으로써 인간의 일이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하늘의 도에 따른 수행을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만일 하늘의 도를 어기우면 누런 금(金)을 입고 흰 옥(玉)을 먹어도 복(福)됨이 아니며, 흰 털이 다시 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더라도 수(壽)함이 아니며, 벼슬이 일품(一品)이요 훈장(勳章)을 찾더라도 귀함이 아니니라.

이러한 수행의 자세적 측면을 통하여, 서 일은 수행의 궁극으로 유(儒)․불(佛)․선(仙) 삼교의 종지를 포함하는 삼법(三法)의 완성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땅이 하늘에 이음을 보고 몸을 닦으므로 성품을 거느리며, 바람이 하늘에 다님을 보고 기운을 기르므로 성품을 단련하며, 물에 하늘이 비췸을 보고 마음을 밝히므로 성품을 보느니라.

즉 유교의 몸닦음[修身]을 금촉(禁觸)으로, 도교의 기운기름[養氣]을 조식(調息)으로, 불교의 마음밝힘[明心]을 지감(止感)으로 엮어 망(妄)을 돌이켜 참으로 나아가는 법을 설파한 것이다. 나아가 서 일은 밝은이[哲人]가 수도하는 것은 반드시 하늘의 수인 여섯큼[六大; 天․火․電․水․風․地]의 원리를 토대로 서른 여섯 가지의 묘화상(妙化相)으로 형상화됨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은 수행의 완성단계를 이끌어 내고 있다.

밝은이가 되어 감은 비록 여러 가지의 묘법(妙法)이 있으나, 그 공적이 완전함에 미쳐서는 마침내 트임으로 돌아가나니, 이것을 참을 돌이켜 하느님[返眞一神]이 된다고 말하느니라.



Ⅳ. 맺음말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개인의 영달과 명예를 백안시하고 종교적 신념과 조국을 위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위의 글을 통하여, 백포 서 일이 그러한 삶으로 초지일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그가 남겨놓은 저술의 모두가 대종교의 삼일사상(三一思想)을 과학적으로 체계화시키고 분석적으로 현대화시킨, 심오한 종교서(宗敎書)이자 철학서(哲學書)임을 확인해 보았다.
먼저 백포 서 일의 삶은, 대종교에 들어와 중광단을 조직하여 북로군정서로 발전시킨 뒤 청산리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밀산 당벽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한 마디로 지극한 종교적 수행과 무장투쟁의 정신이 합쳐진 수전병행(修戰竝行)의 삶으로 일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한 종문(宗門)의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수행론적 명분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행동하는 양심의 모습을 실천하려는 투쟁론적 명분이 합치된 서일의 시대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그 동안 항일무장투쟁에 있어, 서 일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그 투쟁의 과정과 성과에만 초점이 두어졌던 점을 비추어 볼 때, 그의 정신과 연관된 수전병행의 삶에 대한 가치 재평가가 우리 학계에 또 다른 화두로 던져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 고찰을 통해서도, 그가 사유(思惟)하고자 했던 신관(神觀)이 《삼일신고》를 토대로 한 절대적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을 체(體)로 하여, 조(造)․교(敎)․치(治)로 구체화되는 작용신적(作用神的)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기능신(機能神)에 대한 긍정으로까지 이어짐을 알 수 있다.
그의 내세관(來世觀) 또한 《삼일신고》를 구체화한 것으로, 천계(天界)와 마계(魔界)를 설정하고 우리 인간 마음의 의지에 의하여 선택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는 수행관(修行觀)을 통하여 인간완성의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 방법으로 삼법[止感․調息․禁觸]수행을 제시하고 그 수행정신으로 지속(持續)․정성(精誠)․천도(天道)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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