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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일 2006-10-03 오전 10:39:02 조 회 수 2087
제 목 開天節과 檀君 (개천절과 단군)
내 용
로마사 연구자가 로마의 개국(開國) 시조 로물루스를 부인하기 위해 애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건만 우리의 단군(檀君)만은 유독 집요하게 부인의 대상이 되었다. 일제(日帝) 식민사학자들은 심지어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서 단군을 창작했다고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일연 탄생 이전에 이미 구월산에는 환인(桓仁)·환웅(桓雄)·단군을 제사 지내는 ‘삼성사(三聖祠)’가 건립되어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동천왕 21년(247) 조에는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이 살던 곳이다. 다른 기록에는 ‘(선인 왕검이) 왕이 되어 왕험(王險)성에 도읍했다’고 하였다[或云王之都王險]”라고 전한다. 여기서 ‘선인 왕검’은 곧 단군으로서 단군의 왕험성 도읍에 관한 다른 기록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 ‘구당서(舊唐書)’ 고구려 조의 “영성신(靈星神)·일신(日神)·가한신(可汗神)·기자신(箕子神)을 섬긴다”는 기록에서 기자신 앞의 ‘가한신’이 단군이다. 일연이 ‘삼국유사’ 왕력(王曆)에서 고구려 시조에 대해 “성은 고(高), 이름은 주몽(朱蒙)인데… 단군의 아들이다”라고 쓴 것이나 이승휴가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 “시라(尸羅·신라)·고례(高禮·고구려)·남북옥저·동북부여·예(穢)·맥(貊)·응(膺·백제) 등 여러 임금이 누구의 후손인가를 묻는다면 세계(世系)는 역시 단군에서부터 이어져 왔다”고 쓴 것처럼 단군은 민족사의 시조였다.

이런 인식은 조선 때도 연면(連綿)했다. 조선은 개국년(1392) 8월 “단군은 동방에서 처음으로 천명(天命)을 받은 임금”이라며 제사를 지내게 했다. 영조는 “환웅은 곧 단군의 아버지이고, 환인은 곧 단군의 할아버지이다.(‘영조실록’ 41년 12월 8일)”라고 말했고, 정조는 “우리 동방의 개국은 단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정조실록’ 16년 8월 12일)”라고 말했다. 이처럼 ‘개국 시조=단군’은 조선에서도 하나의 상식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단군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단군이 실존하면 동북공정의 모든 논리가 헛소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이 단군이 조선을 개창한 개천절(開天節)이다. 개천절이 명실상부한 민족의 명절이 될 때 불온한 이웃 국가들이 헛꿈을 꾸지 못할 것이다
(이덕일 - 10월 3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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