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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일 2007-11-12 오후 1:25:54 조 회 수 1403
제 목 근대 한글운동과 미래
내 용
유영인(국학연구소 연구원)

국학의 대상은 이미 국학연구소 차원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줄기로 하여 민족사에 연면히 이어온 문(文)․ 사(史) ․ 철(哲)로 규정한바있다. 오늘은 문사철(文史哲)중에서 문(文)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문(文)을 세분화하면 언어와 문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중 오늘의 주제는 언어 즉 국어인 한글과 미래의 가치이다.

사실 한글과 그 사용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 된 것은 세종의 애틋한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창제된 訓民正音의 반포(1446년)가 있은 지 450여년이 지난 19세기 말엽에 이르러서이다. 근대에 이르러 본격화된 한글운동을 최선봉에 서서 주도하며 혁혁한 공적을 남긴 분은 바로 주시경(1876-1914) 선생이다. 선생은 「국문연구소(1907년)」, 「조선광문회(1910년)」, 「독립협회(1896년)」등에 관여하며 한글연구에 전력을 다하였다. 또한 선생은 한글보급과 교육에도 열정을 다했다. 선생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한글 강습을 시행하였다. 선생의 한글 강습은 융희 초년(1907년)에 시작되어 생의 마감까지 계속된 「조선어 강습원」에서 이루어 졌다. 이곳에서 선생은 각 급 학교에서 몰려든 청년학생들에게 일요일 마다 무료로 국어 국문을 강의하고 애국사상을 고취시켰다.

한마디로 선생은 근대 한국 국어학의 대 선각이요, 교육자, 정치가, 애국지사였다. 또한 선생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이래, 소중화사상과 사대주의의 한학의 그늘에 빛을 잃은 우리 한글의 새로운 현대적 과학적 터전을 갈고 닦는 한편, 일제의 탄압 속에 사라져 가는 나라 정신을 교육과 애국, 독립활동으로 겨레의 마음에 심어 주었다. 여기서 주시경 선생의 한글운동을 충실하게 계승한 외솔 최현배의 선생에 대한 민족사적 관점에서의 평가는 음미해볼만하다.

생각하건데, 한양조선 오백 년 이래로, 우리나라에 학자, 교육자가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네들은 거의 다 유학자(儒學者)로서 그 연구의 대상은 송나라 주희의 유학이요, 그 실행의 이상은 완전한 소중화 됨에 있었다. 이러한 사대주의의 학자, 교육자에 대하여, 나라의 정치적 자유와 겨레의 문화적 독립을 근본정신으로 삼고, 제 나라의 말과 글을 갈고 가르쳐, 드디어 삼천만 온 겨레로 하여금 올바로 정리된 한글의 혜택에 목욕하도록 그 첫길을 연 이는 오지 우리 주시경 스승 한 분 뿐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주시경선생이 온갖 艱難苦楚 속에서도 온몸을 던져 한글운동을 전개한 것은 선생의 언어에 대한 깊은 사상성 때문이었다. 선생은 언어 즉 모국어를 ‘獨立의 性’ 또는 ‘국성(國性)’으로 보았다. 이는 선생이 언어와 국가․민족을 一體로 보는 언어관을 그 철학적 기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관을 지닌 선생은 “자기 나라를 보존하며 자기 나라를 일어나게 하는 길은 나라의 바탕(國性)을 장려함에 있고, 나라의 바탕(國性)을 장려하는 길은 자기 나라의 말과 글을 존중하여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선생은 말이 국가의 흥망성쇠와도 관련되는 중요한 것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에게 말과 글의 연구는 단순한 학문을 위한 학문의 차원을 넘어 나라의 터전을 바로잡고 나라를 보존하는 민족의 존망과 관련된 차원의 것이었다.

또한 선생에게 한글은 겨레의 얼(민족정신, 국성)의 소산인 동시에 겨레 얼의 생산자이기도 했다. 즉 그에게 한글은 국성을 반영하는 소극적 대상에서 국성을 생성해나가는 적극적 내상으로 까지 확대된다. 선생의 이와 같이 民族과 言語를 同一性의 긴밀한 관계로 보는 언어관은 19세시 독일의 언어학자인 훔볼트(W. von Humboldt)의 언어 철학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또한 선생이 言文修理를 통하여 自主獨立과 國家․民族의 발전을 꾀하려 하였음은 훔볼트학파가 언어를 ‘되어진 것(erogon)'으로 보다 ’이루어내는 힘을 가진 것(energia)'으로 파악하려 했던 것과도 상통된다.

주시경 선생의 소망대로 완전한 한글전용 시대를 이룩한 지금에도 한글은 한글의 가치에 대한 대중의 몰이해로 오염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글문화에 대한 현금의 상황을 생각할 때 주시경 선생의 생각과 업적은 오늘과 미래에도 여전히 소중한 가치로 남아있다.

오늘날 한글문화에 대한 우려할 만한 상황에서도 한글의 가치를 실천하는 문화현상과 미래적 생각이 있어 주목된다. 그 하나는 한글의 조형미를 패션에(Fashion Design) 응용한 예이다. 그 주인공은 얼마 전 MBC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던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이다. 그는 한국 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한글을 주제로 한 패션전시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또 다른 면에서의 한글에 가치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한 예라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는 아직 문자를 갖지 못한 부족이나 나라에 한글을 수출하는 것에 관한 소식이다. 지난달 18일 국민일보의 “한글을 수출하자”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글수출현황에 대한 대용이 소개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기사에서 독자적인 문자를 갖추지 못한 세계 소수민족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움직임이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고 나아가 한글의 세계화가 보다 활성화되려면 민․관의 체계적인 지원과 상대 민족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한글을 기반으로 한 컴퓨터 운영체계의 개발에 관한 것이다. 이는 한국인으로 미국 사회에서 최고지위까지 오른 예일대 법대 학장인 고홍주의 모친인 전혜성 동암문화연구소(East Rock Institute) 이사장이 몇 년 전 한 TV 대담프로그램에서 밝힌 내용이다. 사실 현재의 컴퓨터 운영체계를 주도하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우 방식과 맥킨토시의 Mac Os 또한 리눅스등 모두가 영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운영체제이다. 전혜성 이사장에 따르면 한글은 세계의 모든 언어 중에서 모든 소리를 표현해 낼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언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한글의 특성을 살린 한글기반 컴퓨터운영체제(computer operating system)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세계 컴퓨터 운영체제를 지배하는 영어기반 운영체제의 높은 벽을 생각하면 한글기반운영체제의 개발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검토와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 된다면 전혀 불가능한 꿈도 아니라 본다.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의 제시만도 의미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참고자료

한국과 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한글을 주제로 한 패션전시회를 한국대표로 이상봉씨가 맡았다.
한글과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는 행사이니만큼 한글의 내용또한 중요해서
수백 가지의 한글 텍스트와 시를검토하여 최종적으로 천상병 시인의 '귀천'
'조선시대의 사랑과영혼'의 내용을 싣고.
메인칼라는 화이트 블랙 오렌지로 선택되었다.
 
수개월동안의 준비하는 과정이 전쟁을 방불케 했다고 할만큼 힘든 작업이었지만.
현지에선 너무 좋은 반응으로 인해.
그 힘든 여정이 너무 감동이었다고 전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이 아름답다고 얘기하고. 한국의 문화를 패션으로 나마
접목하게되어.기쁘다고 전했다.
한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는 가장 존경하는 왕이 세종대왕이 되었다고 할만큼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던듯 하다.
 
한글 패션으로 파리지엔을 놀라게 한 이가 한국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1-시크한 블랙라인컬렉션
2-한글패션 전시장 내부
3.4-2006 S/S LEE SANG BONG 컬렉션
5-패션쑈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던 한글 가방
   파일:국학의미래.hwp(159.00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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