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관리자 email gukhak@gukhak.org
작 성 일 2012-11-23 16:47:02 조 회 수 986
제 목 국학과 역사-근대 역사학의 이해
내 용

 

國學歷史(1) - 근대역사학의 이해

 

1. 역사학의 의미와 한계

 

역사학이란 지나가 버린 사실을 재현하는 학문이다. 거기에는 가볼 수도 만나볼 수도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료의 부족과 사료가 가진 진실성에 대한 회의를 가질 수 있다. 즉 과거에 지나간 사실이기 때문에 지극히 부분적이고 심지어는 편파적인 성향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료를 해석하는 역사학자의 주관이 도외시될 수 없다. 랑케L. V. Ranke가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주관에서 탈피할 도덕적 수양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도 이를 경계함이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주관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학의 딜레마다.

역사학을 연구하는 매체로서 언어의 한계성 역시 자주 문제가 된다. 즉 언어는 단지 기호일 뿐으로, 언어는 같은 대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자의성에 의한 역사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경우다. 또한 언어는 그 구성에 의해 다양한 의미를 산출해 낸다. 언어의 함축성다의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언어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이러한 언어의 한계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편 역사학에서 대상을 재현한 신빙성의 정도는 그 표현들 사이에서만 결정될 뿐, 그 절대성은 존재하지 않다는 점도 주목해야할 사항이다. 즉 다양성과 역사현상의 상대적 절충을 통하여 역사의 민주성을 얻는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역사의 다양성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오히려 분열될 수도 있음을 걱정해야 한다.

 

2. 근대역사학의 등장

 

근대 이전의 역사학은 문학의 범주에서 호흡했다. 역사를 과학이라는 범주에서 파악하게 된 것은 근대 자연주의적 경험론과 실증주의의 영향에서 기인한다. 랑케를 객관적 역사학의 창시자로 추켜세움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역사학을 독립적 학문분야로 분리시킨 장본인도 랑케다. 그는 역사학은 과거를 판단하고 미래를 가르치기 위해 현재를 교육하는 의무를 가진다는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역사는 단지 과거에 어떤 일이 실제 일어났는지 보여줄 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복원하는 의무를 지닌다는 것이 랑케의 견해다. 또한 역사가는 주관과 편견을 철저히 배제하면서, 역사가 자신을 최대한 소거하여 과거의 사실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역할자로 나타날 뿐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역사가는 단지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발견해 나갈 뿐임을 상기시켰다. 랑케에 의해, 객관적 역사의 추구로 역사학이 독립학문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다.

한편 랑케는 역사의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무한의 관점에서 볼 때 시대간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을 근거로 특정시대가 다른 특정시대에 비판 받을 수 없다는 것도 랑케의 입장이다. 랑케는 그 이유를, 각 시대는 신의 섭리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우리 특정시대의 인간들은 그저 그 시대를 드러낼 뿐, 판단하고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랑케의 획기적인 공헌은, 고대중세 문헌 연구를 위해 당시의 문헌 연구방식을 역사학에 적용했다는 점이 꼽힌다. 즉 문헌고증의 핵심이 되는 사료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료비판에는 내적비판과 외적비판을 들 수 있다. 내적비판이란 당시에 쓰이던 용어나 문맥상의 일관성 등을 파악하는 방법이고, 외적비판은 동시대 사료까지 비교대조를 통해 신빙성을 확보해 가는 방법을 말한다. 랑케는 1차 사료(사건발생과 기록시기)를 우선시하면서, 1차 사료야말로 가장 순수한 자료(Primary sources)라 했다.

 

3. 근대역사학에 대한 비판

 

랑케에 의해 성립된 근대 역사학은 궁극적으로 이후 역사학의 모범이 되었다. 때문에 랑케의 역사학에 대한 이후의 비판도 어찌 보면 역사학은 전문분과여야 한다는 것과 역사학은 과학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랑케의 주장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였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더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역사학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압력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논의의 출발은 독일의 칼 람프레히트(Karl Lamprecht)에게서 나오게 된다. 람프레히트는 기본적으로 역사가들의 학문적·과학적 역사 서술은 사료에 대한 엄격한 비판과 검토와 평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독일사에서 랑케가 국가의 역할과 개인과 사건을 역사학의 주요 주제로 삼았던 것에 반발하여, 문화와 사회, 정치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면서 당시 대중들이 읽기 쉬운 문체를 통해 전문용어나 과학적인 논리 전개와는 다른 이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또한, 역사학이 자연과학과 같이 고립된 현상만을 기술하는 것은 역사학이 가지는 과학성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람프레히트의 논의는 독일에서 커다란 반발에 의해 거의 무시되게 되지만 프랑스와 미국처럼 역사학과 사회학이 개방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던 국가들에서는 어느 정도 수용되게 된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신사학(the new history)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는 데, 신사학은 람프레히트의 영향에 받아 역사연구는 인간의 과거에 관한 조사이므로 어떤 한 분야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역사학의 연구범위도 자연히 광범위하게 넓어져야 한다고 말하게 된다.

미국의 로빈슨James Harvey Robinson1912the new history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자리 잡은 신사학은, 종래 랑케가 보여준 과거 정치 중심의 접근방식을 떠나 새로운 역사 서술의 양식을 제시했다. 즉 역사연구는 인간의 과거에 관한 조사이므로, 어떤 한 분야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 아래, 문명을 총체적으로 다루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 연구의 방법 역시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과거의 주요 시기의 문명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해야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역사가 당대와 관련된 문화와 사회제도들의 기원을 소급하여 과거와 현재의 상대적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사학이 사상사나 정신사와 밀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상대주의적인 역사관은 수직적인 역사서술(국가나 정치사 위주)에서 수평적인 역사서술(사회·경제·문화 등의 새로운 영역이 추가된)로 근대 역사학의 범위를 넓히고, 랑케의 실증주의적인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4. 열린 역사학으로의 지향 -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만남

 

(1) 아날학파와 역사학

 

아날(Annales)이란, 1929년 뤼시앙 페브르Lucien Febvre와 마르끄 블로끄Marc Bloch에 의해 창간된 역사학잡지 사회경제사연보Annales d'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에서 나온 말이다. 아날학파란 바로 이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역사가들이 하나의 학파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랑케로부터 맑스나 베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후 미국의 사회과학 지향적 역사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가들은 역사를 미래로 흐르는 일차원적인 시간을 가로지르는 운동의 차원으로 파악하려했다. 그러나 아날학파의 역사가들은 시간의 상대성과 다층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개념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였다. 195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아날학파는 대게 베르H. Berr와 뒤르켐E. Durkheim의 프랑스적 사회과학의 전통들을 이어 받아 역사학에 사회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였으며, 정치사 중심의 역사학 서술을 거부하였다. 그러므로 아날학파는 전통적인 독일사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역사학으로 인식되었으며, 사회사, 전체사, 심성사 등, 새로운 언어들이 이 학파의 성격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아날학파는 인류학적인 기법들을 동원하여, 여러 시대에 걸친 변화의 과정을 서술하기보다는 하나의 문화 혹은 하나의 시대를 역사의 흐름에서 분리하여 파악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관심은 하나의 단일한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 대신에, 상이한 문명들 사이에서나 각각의 문명 내에 존재할 수 있는 이질적인 시간의 흐름들을 추적하여 역사학에서의 복수의 시간의 개념들을 창출해낸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는 직선적 시간 개념이 폐기됨과 더불어, 진보에 대한 확신과 서구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 또한 파기되게 된다. 인간의 역사에 대한 랑케의 실증주의적인 역사학이나 상대주의적인 역사학에서의 거대 담론 위주의 통일된 역사 발전의 개념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아날학파는 주장했다.

이러한 풍조를 토대로, 아날학파의 입장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 근본적으로 인류학적 접근방식을 통해 삶의 실존적·경험적 측면을 조명하는 의식의 역사를 지향하였다. 둘째, 복합성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변수들이 다소 통제되는 모노그래프적인 접근을 선택하기보다는 오히려 복합성을 포용했다는 점이다. 셋째, 폭넓은 영역을 포괄한다고 해서 그 범주들을 폐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역사의 기술에서 중심의 위치로 복권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한편 아날학파의 역사기술은 끌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y-strauss의 인류학과 레비스트로스에게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 철학에 일정 정도 조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과 구조주의는 흔히 의식에 대해 사회적 무의식을, 인간의 이념에 대해 언어를 주장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구조로 대치시킨 것이라고 한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 아날학파의 '장기지속'이다. 이것은 바로 역사라는 공간은 선험적(先驗的aﬞﬞ priori)으로 존재하는 사회적인 구조에 의해 인간의 삶들이 영위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단순히 사건과 개인의 영향력에 의해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사회적 구조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다양한 의미의 영역들이 분포된다는 아날학파의 역사의 인식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하겠다.

아울러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인 접근들은 아날학파의 인류학적인 역사기술의 방법론과도 흡사하다. 또한 서구중심의 역사를 비서구적인 역사와 동등한 의미에서 파악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런 아날학파의 성립은 랑케의 의해 근대 역사학이 전문 분과 학문으로서의 위상에서 학제간 통합과 교류를 통한 새로운 역사학의의 흐름들을 정립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 역사학과 사회학

 

1960년대의 서독의 젊은 세대의 역사가들은 사회과학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것은 이들이 야만적인 나치 독재가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독일의 과거와 비판적으로 대면하여 민주사회에 헌신하고자 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은 프랑스의 아날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정치를 사회세력과 근대화의 문제와 연결시키어 그들의 연구에 중심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베버를 통한 맑스와의 연결을 통해 정치와 사회 간의 긴밀한 상호 연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적 사회과학'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러한 역사학의 경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한 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다. 이 비판이론은 맑스의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으나, 정통 맑스주의의 사변적·권위적인 측면에서 해방된 것으로, 베버가 말한 사회과학적 연구에서의 가치중립성보다는 고도의 정치적 성향들을 바탕으로 그 이론적 전개를 펼치었다. 이런 비판이론에 영향을 받은 서독의 새로운 역사학은, 1960년대 이후 서구의 역사서술에서 근대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촉구하는 상황에서, 당시 서독의 근대화의 경험들을 옹호하면서 근대성에 대해 긍정적인을 평가를 바탕으로 역사가에게는 정치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와 같은 논리의 배경에는, 근대에 들어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자율과 질서를 토대로 한 공동체의 결성이 가능하다는 하버마스J. Harbermas의 논리도 외면할 수 없다. 이들의 이런 공감은 일반적인 유럽의 전통과의 이질적인 독일의 역사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이 서구의 민주주의 유산을 수용한 것을 옹호하고 있다. 그 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로서,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사회적 책임의식과 결합하는 것이라고 표현되게 된다. 또한 이들의 이런 역사학의 경향은 분명 랑케에서 출발한 독일의 전통적인 역사학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은 랑케의 실증주의적 방법론이 결과적으로 국가와 결탁한 것을 비판하면서, 정치적인 자신들의 입장들을 명확히 했다. 또한 사회학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역사학이 흐름들을 만들어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 역사학과 맑스주의

 

영국에서는 1947년부터 1955년까지 공식적으로 조직된 '공산당 역사가 집단'이 존재하였다. 아울러 이 조직에는 영국에서 명망을 떨친 모리스 돕Maurice Dobb, 로드니 힐튼Rodney Hilton,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조지 톰슨George Thomson 등과 같은 역사가들이 속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얼마 동안 서구의 맑스주의 논의는 대체로 역사 과정에 대한 정통 맑스주의의 개념 틀 내에서 전개되었다. 이런 정통적인 맑스주의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 역사학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은 역사학계 내의 비맑스적인 해석들의 도전이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일단의 맑스주의 역사가들에게서 '아래로부터의 역사학'을 표방하면서 맑스주의 역사학에 새롭게 하층 계급이나 노동계급, 여성들 등을 역사학의 중심 서술 대상으로 인식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중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맑스주의적 역사 지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이 바로 에드워드 팔머 톰슨E. P. Thompson영국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es(1963)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계급 갈등이 이 책의 중심주제이며, 이러한 갈등이 물질적 경험이 문화적 방식으로 처리되는 방법으로 상징되듯이 문화적 구성요소들이 경제체계에 근거하는 방식들을 추적한다. 이런 방식의 맑스주의적인 역사 서술은 영국의 맑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사고되며, 많은 각광과 비판들을 받게 된다. 또한, 이런 민중 문화에 대한 새로운 조명은 일명 '아래로부터의 역사학'으로 상징되는 대중이나 민중의 삶, 활동 및 경험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동안의 주류역사학에서 소외된 역사들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아날'학파의 전체사적인 흐름과도 일면 유사한 흐름들을 만들어내며, 국가나 정치사, 인물사에서 그 동안 소외당한 여러 계급들을 당당히 역사의 서술에 중심으로 부상시키며 대안적인 역사 서술의 역할을 하였으며, 문화사의 흐름에서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유행의 문제가 아닌 여러 사회 구성요소들과의 연관을 통한 새로운 문화사의 흐름들을 창출해 내게 된다.

 

5. 새로운 이론과 역사학

 

포스트모던이론은 현재 현대 철학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이론이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것이 이전의 맑스주의나 실존주의, 구조주의처럼 어떤 공통된 방법이나 사고로 묶을 수 있는 이론이나 철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정체불명의 포스트모던이론이 현대 철학의 큰 흐름에서 보면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포스트모던이론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제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이론은 인간중심주의와 서구주의, 민족중심주의, 이성(로고스)중심주의적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역사적 구성물로의 '근대'에 대해 총체적 비판과 반성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휴머니즘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양식을 구체적이고 이성적인 단일한 주체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부정으로 이것은 인류학이나 언어학, 정신분석학이 발전을 하게 되면서 분열적인 인간의 존재양식이 드러나게 되면서 나타난 문제제기이다. 이런 부분에서 포스트모던 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적 지성은 기본적으로 유럽적인 유형(서구중심주의), 즉 신앙이나 윤리, 이성을 가지고 사회에 관계하는 존재로 인식되어왔지만 이런 유형들은 이제 그 불완전성이 분명해졌으며, 서구를 중심으로 나타난 민족중심주의나 이성중심주의 또한, 그 불완전성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에 있어 인간의 이성의 노력은 데카르트 이후 세계는 객관적, 합리적 그리고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 위에서 성립되어왔다. 이런 확신은 당연히 이성에 의해 세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향상시켜갈 수 있다는 역사에 대한 확신과도 연결되어왔다. 이런 믿음이 바로 근대 역사학의 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경향성으로 이성에 의해 역사적 객관성과 과학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이론에 영향을 받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경우 이런 전제들과 이성에 의한 보편적인 역사적 실재에 접근하거나 구성할 수 있다는 부분이나 이성에 의한 계몽을 통해 역사에 대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사고 전반을 거부한다.

 

(1)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문제제기

케이스 젠킨스Keith Jenkins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주창하는 가장 공격적인 역사가이다. 젠킨스는 확실히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도래를 선언한다. 이런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전개의 근대 역사학에서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근대 역사학의 성과로 여겨졌던 모든 것들을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는 부정하거나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역사(History)의 개념에 있어서도 젠킨스는 역사들(Histories)이라는 표현으로 "역사가 간단하고 아주 명료한 것인 양 생각하는 태도를 과감히 버리고, 나아가 오로지 가시적인 연구대상인 '과거'를 다룬다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갖는 다양한 역사유형의 복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역사(역사서술)란 텍스트들 간의 상호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언어적 구성물이다."라는 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는 전문 분과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이 전통적으로 옹호하였던 객관성과 과학성 및 합리성들에 대해, 상대적인 가치로 전환하여 이해하거나 과학성과 합리성들에 대해서는 언어적인 상징물인 텍스트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전통적인 역사학자들에게는 역사학 자체의 소멸까지 생각할 수 있는 심각한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근대역사학이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문제제기를 더욱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단지 역사학 자체의 성립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역사학에서 주요한 주제로 여겨졌던, 진실·사실과 해석·사료와 문헌정보·인과성 등의 개념들을 언어학적인 문제제기로 취급하는 방법론에 기인한다. 이런 언어학적인 방법론은 근대역사학에서 말하여지는 모든 개념들을 기본적으로 역사는 하나의 담론, 즉 언어게임이다.’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들이 말하는 개념들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한 설명 안에서 사실들이 차지하는 비중, 이치, 결합, 의미작용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언어가 지시대상을 언제나 명확하게 지시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애매함들이 바로 역사학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고 파악한다. 즉 역사학은 일종의 허구적이며 상상적인 문학적 전통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은 '역사란 무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바로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말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만이 역사학에서 그나마 역사가들이 명확히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젠킨스는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근대 역사학이 처한 어려움은 이런 포스트모던 역사가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합리적인 반박의 지점들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에 진짜 문제의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역사학의 덕목들을 준수하는 역사학자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이런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문제제기는 너무나 파격적인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그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곤란스러운 문제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확실히 포스트모더니즘이 규명되기에는 그 의미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그 이론적 전개나 실천에 있어서도 극과 극의 스페트럼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젠키스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나 쟝-프랑스와 리오따르Jean-francois Lyotard 등의 최신의 논의들을 빌어 자신의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이론들을 정립한 것으로 보이나 이런 논의들 자체도 포스트모던 이론들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젠킨스는 이런 지점에 대해 나는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다양한 차이들 중 그 일부분이다. 그 이상을 추구한 적도 없으며,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한 적도 없다고 말하며 이런 비난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며, 그런 비난 자체로 포스트모던의 차이의 세계로 받아들인다.

 

(2) 문학과 문화로서의 역사

 

역사학을 일종의 허구적인 문학의 세계나 '아날'학파의 전체사나 맑스주의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사회경제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언어나 기호의 상징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경향의 문화로서의 역사학은 모두가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적 역사의 핵심을 구성한 과거의 변화에 대한 정합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널리 거부되면서 시작되게 된다. 이런 불신들은 구체적인 인간의 경험을 새롭게 강조하는 문학적인 이야기체 역사나 새로운 경향의 문화사를 예고하게 된다.

이런 문학적인 이야기체의 역사학과 새로운 경향의 문화사는 역사서술의 주제와 그에 따른 방법론으로 그 무게의 중심이 구조와 과정으로부터 문화와 일반 민중의 실존적 삶의 경험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런 이동에 따라 이들은 근대 서구 문명이 과정과 특성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가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맑스주의와 많은 부분에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적인 이야기체의 역사학이나 새로운 경향의 문화사의 경우 많은 부분에서 맑스주의나 '아날'학파의 경향들과 매우 유사한 형식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들이 포스트모던 역사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이런 흐름들이 모두 기존의 근대 역사학에서 중요시한 사료나 문헌자료에 의존하기보다는 언어나 기호를 중심으로 하는 상징체계에 더욱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이다. 이런 상징체계의 해석은 그 동안 너무 다의적인 해석들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역사학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는 불충분하다고 생각되어져왔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이 바로 이 양자가 다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으로 문학적인 이야기체의 역사학이나 새로운 경향의 문화사의 경우 기존의 역사학이 이런 부분들에 대해 무관심하였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에 대한 서술을 국가 위주나 정치사, 구조, 아니면 지배계급에 관한 서술로 한정하였기 때문에, 역사학에서 누락되는 무수히 많은 대다수의 계급이나 계층성 등이 나타나게 되고 이런 부분들이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고서는 사회의 변화에 대해 제대로 서술할 없다는 입장들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케이스 젠킨스의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 느껴지는 허무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나름의 진지함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 미시사와 생활사의 대두

 

역사를 거시사와 미시사로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말하여지는 대상의 범주로 이것들을 이해한다면 많은 혼란들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시사의 흐름들은 역사의 낙관적인 견해들과 일정정도 그 괴리감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나 이런 미시사적인 역사의 서술이 방법론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역사가들의 정치적·윤리적 이유로부터 유래한 점들에서, 일정정도의 공통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미시사를 말하는 역사가들 대부분이 공공연한 맑스주의자로 출발했다가, 이후 맑스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거시사적인 개념들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도 하나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시사를 주장한 역사가들의 주장도 앞서 말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흐름과 유사하다. 즉 기존의 역사가들이 역사연구의 주제를 권력의 중심이라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 중심이 아닌 주변의 대다수의 사람들의 역사적인 복권과 그 의미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미시사를 주장한 역사가들은 역사는 더 이상 단일한 과정으로, 즉 수많은 개인들이 묻혀 버리는 거대 담론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별적 중심을 지닌 다면적 흐름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개념적·방법론적 역사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는 말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며, 구체적인 인간의 삶의 경험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또한, 이런 미시사의 흐름은 거시사적 역사학에 대해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근대에 대해 여타의 포스트모던 역사학과 함께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이나 이런 근대에서 타자화된 부분들에 대한 의미부여를 통한 재구성의 가능성들을 말하는 부분에서도 많은 유사점을 지닌다고 하겠다.

 

 

[참고] 근대역사학에서의 접근방법

 

1. 실증주의적 접근

 

역사적 객관성과 진리의 문제를 실증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사조로, 근대역사학 초기의 랑케의 역사학과 랑케의 역사학에 영향을 받은 역사학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에서 이런 실증주의적인 태도는 첫째, 대상의 동일성을 전제한다. 둘째, 주체의 동일성을 전제한다. 마지막으로 대상과 주체를 동시에 담고 있는 장의 동일성이 전제된다.

 

2. 현상학적 접근

 

실증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온 방법으로, 가능한 한 개념적 전제를 벗어던지고, 그 현상을 충실히 기술하려는 시도를 중요시한다. 이런 사고는 전통적인 학문개념과는 약간의 불협화음이 생겨나게 된다. 전통학문은 주관성을 버리고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인데, 현상학의 경우 주체와 대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역사적인 객관성과 진리가 생겨난다는 실증주의적인 역사학의 접근과는 달리, 현상학적 역사학의 접근은 역사가와 역사적 대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런 객관성이나 진리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3. 구조주의적 접근

 

인간의 인식이나 감정 등과 사회적인 이성이나 무의식들은 개인이나 사회의 개별적인 특성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개인이나 사회를 규정하는 하나의 틀로서 자리 잡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들을 개인적인 결단이나 개별적인 사건의 영향을 확대 해석하는 경향들이 나타나게 되는 점들을 비판하면서 나오게 된 것이 바로 구조주의적 역사학의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구조주의의 문제의식은 간단히 말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구조에 의해 역사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며, 이런 구조주의적인 역사학의 접근에서 역사의 주체들은 이미 존재하는 구조 내의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게 된다. 아날의 장기지속이나 맑스주의의 경제적 토대의 개념들은 구조와 비슷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4.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

 

우리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 이분법적 사고나 이것을 바탕으로 한 진리에 대한 상, 사료와 문헌의 중요성, 역사가의 객관성과 중립성 등 이런 전통적인 범주들의 가치들을 해체하고 그것들의 경계를 흔드는 시각에서 출발하는 접근법이다. 이런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던진 인식론적인 문제제기는 이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의 소멸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에 우리들을 처하게 만들었다. 이제 도대체 역사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라는 식의 질문이 우리가 처한 상황에는 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런 문제제기들에 기존의 역사학 역시 이런 질문들을 피해가거나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역사적 객관성과 진리성의 한계 그리고 그 제한성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입장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근대에 관한 부정은 바로 근대역사학의 전문 분과 학문으로서의 위상과 전통, 그리고 역할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역사학에 많은 위협이 된다. 위안이 되는 것은 이 두 흐름이 반드시 충돌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구성적인 양식에서 역사가들로 하여금 사료를 가까이 들여다보고, 그 표면의 외양을 진지하게 검토하여 텍스트와 서사에 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아울러 새로운 주제와 영역을 열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포스트모던 역사학으로 인해 역사가들은 이전과는 달리 자신의 방법과 절차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자기 비판적인 성찰을 할 수 있었다는 점도, 포스트모던 역사학과 근대 역사학이 전통이 공유할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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