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관리자 email gukhak@gukhak.org
작 성 일 2012-11-23 16:45:49 조 회 수 1004
제 목 국학의 학문으로서의 위상
내 용

 

國學學問으로서의 位相

 

 

1. 학문으로서의 국학의 가능성

 

학문(science)이란 지식의 조직체를 뜻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실험에 의하여 주어진 단편적인 지식은 (science)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학이 형성되는데 필요한 소재로서는 중요하나 학은 그들 개개의 지식이 필연적 연관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구조적 전체를 형성하여야 한다. 이 조직체를 체계라고 하며, 학은 체계화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은 학문(學文)이 아니라 학문(學問)이다.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닌 묻고 배우는 의미다. 사물을 탐구하여 이론적으로 체계화된 지식(知識)을 세우는 일로, 즉 궁구(窮究)한다는 것이다. 한편 학()은 배운다는 의미로 도리를 깨우쳐 안다는 뜻이다. 그 글자형은 가르칠 교()’덮을 멱()’로 이루어져있다. ()은 아직 몽매하다는 의미다. 또한 학()은 전문(篆文) ()의 생략형이다.

()은 말이 나오는 입과 사람이 들고 나는 문이 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을 통하여 나오고 들어감을 따져 묻는다. 그러므로 문초하다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즉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것은, 어떤 결과나 일에 대함을 사리에 맞도록 따지고, 들어오고, 나감을 정확하게 궁구하기 위함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설문(說文)에 문()을 곧 신()이라고 한 것도 이것과 연관된다. 청나라 계복(桂複)은 곧 訊問을 말하는 것으로, 풀어 말하면 聘問이다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신문(訊問)은 따져 물어 무엇인가를 캐내는 것을 말하며, 빙문(聘問)이란 예를 갖추어 찾아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학문에서의 문이란, 예를 갖춰 조밀하게 찾아보는 것이다. 여기서 예를 갖춘다는 것은 진실 되고 정성어린 자세를 말함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학문은 서양에서 말하는 ‘study’‘learning’과는 차이가 있다. ‘study’‘learning’은 단순히 배운다는 의미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묻고 배워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학문이라면 국학만큼 근접한 것도 찾기 힘들다. 국학이야말로 문철을 토대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국학의 학문으로서의 고민도 이와 맞물려 있다. 즉 국학이 학문으로서 자격을 얻고, 바람직한 교과과정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학이 학문으로서의 요건을 구비하고 있는지가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그 대상과 속성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요구되는 동시에, 그 특징과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 학문으로서의 국학의 기원

 

학문은 언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라는 의문을 풀기위해 학문 발생 이전의 지식의 발생, 즉 지식이 언제, 어떻게 발생했던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식과 관련된 인간의 특유한 행위는 아마도 인간의 사색 능력일 것이다. 사색이 없다면 의문이 없다. 의문이 없다면 회답도 없다. 회답이 없다면 지식도 없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methodical doubt)를 대표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구절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지식은 인간의 사유 능력에서 발생한다. 사유 과정에서 발생된 여러 회답 중에서 보편타당하다고 간주되는 회답들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축적됨으로써 체계화할 필요가 생겼다. 보편타당한 지식들이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면서, 학문도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학문을 보편타당한 지식체계에 대한 탐구라고 한다면, 학문의 발생은 탐구의 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 우리의 국학이 우리민족의 끊이지 않은 사유와 연관됨도, 국학의 학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즉 민족문화를 꾸려온 우리의 유구한 역사 자체가 탐구의 시간이요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학문은 주창한다고 되는 것만은 아니다. 시도 이상으로 보편적 달성을 위한 합의와 노력이 따라야 한다. 칸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사람도 그 자신의 이념을 근저에 갖지 않고서 학문을 건설하려고 시도하는 자는 없다. 그러나 학문이 완성된 다음에 있어서 그것의 도식뿐만 아니라, 그가 우선 최초에 그러한 학문에 대하여 주는 정의까지도 그의 이념에 거의 합치하지 않는다.(중략)이 때문에 우리들은 학문을 설명하고 한정함에 있어서, 학문은 모두 어떤 보편적 관심의 관점에서 고찰된 것이므로, 학문의 창시자가 그 학문에 부여하는 기술에 따라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우리들이 총괄한 각 부분의 자연적 통일에 의거하여, 우리들이 이성 자체 속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념에 따라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3. 학문으로서의 국학의 조건

 

데카르트 이후 자연과학적 지식의 인식 양태를 모든 학문적 인식의 기본으로 삼게 된다. 이러한 양태는 주관과 객관, 의식과 존재, 인간과 세계, 가치와 사실 사이에는 건너뛸 수 없는 간격을 설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치에서의 참다운 인식이란 주관의 개입 없이 순수하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역사과학자연과학 그리고 인문과학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었다. 물론 학문의 객관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론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적 객관성의 거부라기보다는 심화를 요구하는 이론들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의 조건을 말함에 있어서 그 객관성의 문제는 인식의 주요한 초점이 되었다. 흔히들 학문의 성립조건으로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한 객관성과 함께, 인과성과 법칙성을 드는 이유도 이러한 경향과 유관하다. 즉 학science은 연구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그 연구방법이 마련되어야 하고, 객관적인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의 조건은 학문 성립의 필수가 되며, 어떠한 학이든지 그것이 학으로 간주되려면 합리적 조건이 필요하다. 정보과학의 석학인 사라세빅Tefko Saracevic과 리이즈Alan M. Rees는 학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주어진 현상에 있어서 공통된 관심이 있어야 한다. (2) 확고한 자격을 갖추고 업무수행을 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 많이 존재하여야 할 뿐 아니라, 학술연구기관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3)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유용한 기법도구방법론 및 이론적 토대가 존재해야 한다. (4)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정식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5)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간에 공식비공식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있어야 한다. (6) 전문적인 학회나 협회 및 학술지의 출판 등이 존재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사항을 토대로 우리 국학의 현실을 검토해 보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결코 부족한 것도 없다. (1)의 사항은 우리에게 공통된 관심사다. 특히 집단적 위기상황에서는 위기극복의 논리로서만이 아니라, 상황의 개혁을 통한 진보적 가치로도 나타났다. (2)의 조건은 아직 미흡하다. 기존의 교육제도에서는 국학이라는 교육과정과 학위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학에 종사하는 전문자격자나 연구인력이 충분치 않다. (3)도 아직은 초보 단계다. 그러나 국학의 이론적 속성으로 보면, 그 해결은 시간문제로 남아 있다.

(4)항 역시 기존에는 전무했다. 물론 이와 관련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방 후인 1946년 대종교 계열의 국학대학이 설립되었지마는 체계적인 학문 논리를 만들지 못하고 사라졌다. 당시 국학대학 학생회에서는 국학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19466월에 국학을 중흥하자는 기치 아래 창간된 이 잡지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학보(學報)의 성격을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19472월 통권 제3호를 끝으로 폐간했다. 창간호에는 대종교의 중심인물들이었던 안재홍과 이극로의 축사와 더불어, 정열모의 국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권두언을 실었고, 설의식의 자아의 광복’, 이선근의 당쟁과 조선이라는 논문도 수록했다. 이밖에도 방종윤의 훈민정음과 훈몽자회와의 비교’, 김경탁의 한글의 모음 위치에 대하여’, 유치진의 희곡 며느리등을 수록했으며, 김태준의 , ‘신문학 건설의 이념’, 임화의 진정한 민족문학의 길’, 박세명의 아동문학의 재인식과 같은 문화사론들도 나타남을 볼 때, 철을 중심으로 국학의 활성화를 모색하려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근자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의 국학과가 개설되어 운용되고 있지마는 많은 논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5)는 그동안에 학회나 연구소 등에 속한 전문가들의 꾸준한 학문적 교류와 학술발표 등으로 충족되어 온 요소다. 특히 여타 한국학과는 다른, 특화된 연구성과의 축적은 이러한 채널의 소통 속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6)항 역시 기존 한국학의 연구실적에 비하면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1987년 국학연구소의 출범을 통한 정통 국학에 대한 연구 담당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또한 국학연구(國學硏究)등의 전문연구지의 꾸준한 발간은 우리 국학의 질적 성장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재론한다면 우리 국학은 학적 조건의 전부를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당 부분 충족되었거나 근접해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의 이러한 고군분투는 별안간 나타난 것이 아니다. 20세기 국권의 빼앗김 속에서도, 국학의 중흥을 통하여 국권을 찾으려했던 수많은 선배들의 노력과 무관치 않다. 특히 문철 방면에서 보여준 그들의 학문적 업적은, 국학의 학으로서의 성립에 많은 토대를 제공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학이 하나의 학문으로서 충분히 연구될 만한 요소가 있다는 것은 쉽게 추론된다. 다만 우리의 노력과 시간의 문제가 변수일 것이다.

 

 

4. 학문으로서의 국학의 논리

 

학문은 전문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으로, 그 방법을 훈련하고 습득하는 절차도 중요하다. 이것이 논리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관심영역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과정을 거쳐서 얻어진 지식의 체계를 학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풀어 말해서, 탐구의 과정을 거쳐서 얻어진 단편적인 지식들이 필연적인 연관 위에서 원리적통일적전체적으로 조직되어 객관적 타당성과 논리적인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도록 체계화되어 있을 때, 그러한 지식의 체계를 학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예리한 관찰을 통한 이론과 가설을 생명으로 하는 자연과학적 방법과 절차는, 현금의 인문과학에도 그대로 요구되고 있다. 적어도 학문이라면 단순한 사실의 수집과 관찰에만 만족할 수 없으며, 이론적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을 통하여, 어떤 일반적인 이론적 지식과 통찰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하여 얻어진 결론이 비록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부단히 수정되고 보완되어 궁극적인 완전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전제를 믿고 작업을 해야 한다.

진리 추구, 즉 진실을 탐구한다고만 해서 학문이 아니다. 학문은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이상으로 검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를 둔다. 그리고 새로운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학문은 논리로 이루어진다.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논리화나 체계화가 되지 않으면 학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학문은 실천의 지침인 이론을 마련한다. 학문의 방법론에 따라 가설에서 시작한다면, 현실에서 입증되어야 하고, 사실에서 시작한다면 이론 정립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디서 시작하던 사실과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학문은 이루어진다. 더불어 학문은 독백이 아니고 대화이다. 토론을 통해서 창의적인 새로운 지혜를 모을 수 있다.

국학의 학문적 논리성은 분명하다. 우선 국학의 진실 탐구로서의 대의명분은, 인문학적 사상(事象)의 근본에 대한 연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걸림이 없다. 더욱이 문철을 토대로 한 인간 근본 가치에 대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진실 탐구의 의미에 무엇보다 무게가 실린다. 다음으로 국학의 학문적 논리성 역시 미흡함이 없다. 그 개념을 확실히 세울 수 있고, 그 대상을 차별화할 수 있으며, 그 내용적 실체와 속성 등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학 이론의 마련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본디 이론이란 사물의 이치나 지식 따위를 해명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일반화한 명제의 체계를 일컫는다. 우리의 국학도 무엇(연구 대상)과 어떻게(연구 방법), 그리고 왜(연구 목적)가 분명하다. 이러한 노력은 과거 국학 선열들의 경험에서도 이미 축적된 바 있다. 우리는 이것을 토대로 정리재창조하는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 국학은, 독백 즉 닫힌 학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화로 연결되지 않고 독백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 구호선언에 불과하다. 개별성의 유지 속에서 보편성을 지향하고, 지역성의 특성을 안고 세계성을 추구하려는 것이 우리 국학이다.

 

 

5. 학문으로서의 국학의 대상

 

학문은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모로 발전하여 왔으며, 지금도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미래를 향해 진행하고 있다. 학문의 본질이 장차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지금의 시점에서 예상할 수 없다. 학문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 듯, 그 대상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즉 인간사회와 맞닿는 그 어떠한 가치문제라도 학문의 대상일 수 있다. 인간의 호기심의 발로 역시, 학문적 대상 사냥의 모티브다. 호기심의 발동으로 인한 문제의식의 진전,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질문 등등의 과정이 바로 학문 대상화 작업과 연결된다.

묻는 일은 조사하는 일이다. 일단 간단하게라도 알아보고 나면 학습이나 연구에 재미가 붙는다. 그것은 내가 주동이 되는 능동적인 작업이다. 알고 싶다는 마음이 발생할 때 그것을 체계적으로 생각한다면 곧 학문으로 전환될 수 있고 그 대상이 구체화된다.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은 막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 실상을 묻는다면 이미 학문은 시작된 것이며, 그 대상은 다가와 있다.

이미 틀이 잡힌 각 학문은 고유한 연구 대상이 있고, 연구 대상에 따라 방법론도 다르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은 학문의 대상이 수량적인 사물의 영역이므로 수식 등과 같은 과학적인 언어를 요구한다. 반면에 인문과학은 학문의 대상이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므로 양보다는 질이나 의미가치를 중시한다.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한 학문이므로 일상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전공에 따른 주제와 방법을 잘 소화하고 있어야 한다.

즉 수학의 탐구대상은 수이다. 그러므로 수의 개념과 그 법칙이 분명해야 한다. 물리학의 탐구대상은 자연의 물리현상이며, 식물학의 탐구대상은 식물이다. 따라서 물리현상에 대한 일정한 법칙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해야 하고, 식물의 본질과 그 속성을 일정한 질서 속에 묶어놓아야 한다. 한마디로 자연과학의 대상이 자연현상, 사회과학의 대상이 사회현상, 인문과학의 대상이 인간현상이라 한다면, 그 대상을 개념화특성화논리화하는 작업이 바로 학문화 자업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국학이라는 학문의 대상이 다른 학문들에서처럼 밖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문학 자체가 인간현상을 탐구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외연화하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학의 중심이 되는 문철에 대한 접근은 더욱 어렵다. 문학적 정서와 역사적 의미, 그리고 철학적 삶이라는 말들 자체를 학문적으로 대상화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나아가 통합적 시각에서 문철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더더욱 쉬운 작업이 아니다. 가령 철학만 하더라도, 경제학이나 정치학 등, 다른 학문과는 달리 이름만 듣고서는 정확히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철학이라는 학문의 대상이 결코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학문적 대상을 겨눈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국학의 학문적 대상에 대해 피해갈 문제는 아니다. 먼저 문철을 중심으로 인간환경으로서의 대상을 구체화하고, 그 대상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이에 대한 체계를 세우는 것이 바로 국학의 학문화 작업이기 때문이다.

먼저 국학의 학문적 대상은 그 개념화 작업과 맞물린다. 국학을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줄기로 하여 우리 민족사에 연면히 이어온 인문학적 사상(事象)’이라고 개념화 할 때, 그 대상은 확실해 진다. 인문학적 사상이 바로 그 일차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사의 연속성을 채워줄 대상의 속성을 규정하면 된다. 그 사유 범위는 우리의 신교(神敎) 가치와 연관된 문철로 채울 수 있다.

또한 국학의 대상에 대한 학적 속성으로 통학적(通學的) 논리성을 제시했다. 국학은 문철을 떼어 놓을 수 없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내적 속성인 사상적 정체성공간적 차별성’, 그리고 시간적 연속성을 내세웠다. 정체성과 차별성, 그리고 연속성은, 다른 학문의 대상들과의 경계와 더불어 외적 속성이라 할 보편적 개방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6. 학문으로서의 국학의 특성

 

국학은 전통학인 동시에 미래학이다. 과거의 질서를 세우면서 창조적 미래를 지향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학은 지역학인 동시에 세계학이다. 개별적 주인됨을 확인하고 보편적 우리로서 만나고자 함도 이 때문이다. 국학은 감성학이면서 이성학이다. 집단의 성정을 토대로 상대적 논리를 만들어야 함도 그 이유다. 따라서 과거와 미래를 관통시키는, 지역과 세계를 연결시키는, 이성과 감성을 중화시키는 학문을 만들내야 한다. 그것이 국학자의 몫이다.

인문과학은, 사회과학처럼 지난 시기의 고전이 단지 참고자료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가 연구의 대상이다. 또 거기서 찾을 수 있는 창조성과 사상성을 오늘날 되살리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문화적인 맥락에서 계속해야 한다. 인문과학의 연구대상과 거기서 발견되는 의미는 문명권에 따른 공통점이 있고, 인류전체가 공유하는 보편성이 있어, 서로 비교되고 교류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라마다의 특수성, 그리고 개별적인 사항의 구체성이 필수적으로 인식되어야한다는 점을 놓칠 수 없다.

국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삶 속에서 엮어낸 인문학적 사상, 그 자체가 바로 학문적 토대가 된다. 우리의 정체성이 망가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지나온 삶을 망각하고, 그 속에 배어있는 가치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과거가 없으니 창조적 미래를 기대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과거를 이해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도 손님의 눈이 아니라 주인의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내 것이 아닌 과거는 돌아봐야 시간낭비다. 내가 나의 시각으로 과거를 올바로 보고 미래의 희망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국학이다. 그래서 국학은 미래학이다.

내가 딛고 있는 지역을 생각지 않고 육합(六合)을 따질 수 없다. 높고 낮다는 것은 나의 발이 이 땅을 짚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남북을 헤아리고 원근을 가리는 것도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글로컬리즘도 내가 발붙인 여기를 기준하지 않고서는 소용이 없다. 보편성 없는 특수성이 우물 안의 개구리라면, 특수성 없는 보편성 역시 허공에 날려진 풍선밖엔 안된다. 나의 특수성을 충실히 이해할 때 보편성을 각득하게 된다. 우리라는 보편성을 흔들림 없이 응시함에도 나의 꿋꿋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내 것을 알고 더불어 우리로 어울리자는 공부, 그것이 바로 국학이다. 까닭에 국학은 세계학이다.

학문도 삶의 일부다. 삶은 이성으로만 살 수는 없다. 어찌 보면 감성은 이성보다 훨씬 그 외연이 크다. 감성의 균형 없이 윤택한 논리가 어찌 가능할 것인가. 중국이나 일본의 국학이 감성을 외면치 않음도 여기에 있다. 이성학으로 신교의 제천(祭天)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이성의 눈만으로는 신교의 수행이나 개천문화를 논리화하기 어렵다. 이성학이 국학의 씨줄이라면 감성학은 날줄이 된다. 그러므로 국학은 감성학이다.

 

 

7. 학문으로서의 국학의 문제점과 가능성

 

(1) 우리 국학은 새로운 학문으로, 그 학문으로서의 자리매김과 교육과정 및 학위제도 등 모든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학문으로서의 역사적 경험과 그 대상 그리고 속성이 분명함으로, 차분한 준비와 실천만 따른다면 해결해 갈 수 있다.

 

(2) 우리 국학은 기존의 역사인식과 교육과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므로 기존 학설이나 학제와 불가피한 마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학의 존립 의미가 잘못된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고 효율적인 통합적 학과를 개척해 가는 것이므로, 극복해 가야 할 사안이다.

 

(3) 우리 국학은 일본 국학에 의한 편견으로 폐쇄적이라는 오해와 더불어 동북아 국학 논쟁에서 그 정체성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국학과 일본 국학의 성립 배경과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를 분명히 밝히면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국학연구 자체가, 다가오는 동북아시대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노력이니 만큼, 우리의 정체성과 비례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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