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관리자 email gukhak@gukhak.org
작 성 일 2012-11-23 16:43:22 조 회 수 1247
제 목 국학의 내용적 실체
내 용

 

國學內容的 實體

 

1. 우리의 정체성이 궁금하다

 

우리의 현실은 정신적 빈곤을 넘어 정체성의 붕괴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문은 출처와 기준이 모호한 외래학이 만연하고, 문화 역시 국적 분별이 어려운 외래문화의 모방과 아류가 넘치고 있다. 또한 외래사상의 범람으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은 변질된 채, 국학의 근간은커녕 그 주변이야기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득 조선조 이맥(李陌)의 탄식이 생각났다. “지금의 풍속이 한 글자라도 유교 가치에 맞지 않으면 뭇화살의 집중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만큼 유가(儒家)의 예봉은 섬뜻하다. 천부경삼일신고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여도 어찌 쉽사리 논할 수 있으리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대를 주도하는 가치나 사상에 거슬리는 것이, 때로는 두렵고 힘들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런 현상들은 사회 기득권이 향유하고 있는 가치관을 거스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그것을 지키려는 집단들의 자기중심주의적 자세에, 주변세력으로 부딪힌다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기 다반사다.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가치를 미신이요, 비과학적이요, 전근대적이며, 국수적이라는 논리로 공박함에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우리 아닌가.

중화질서와 일제식민지지배, 그리고 해방 이후 우리의 삶을 이끌어 온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가까이 호흡하면서도 낯설다. 특히 625 이후 외래 가치의 범람 속에서 철학이 넘치고 사조(思潮)가 홍수를 이뤄도 무엇 하나 우리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객이 뒤집힌 질서 속에서, 무엇이 우리의 고갱이인가를 안다는 자체가 쉽지 않다. 정체성의 기준마저 무너져 버린 현실 속에서, 국학과 관련한 그 내용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국학의 내용이야말로 우리 정신문화의 DNA이기 때문이다.

 

2.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다

 

과연 우리 국학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국학의 근본인 한국정신사의 정수(精髓)를 세우는 작업으로, 한국의 고유신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인간 사상(事象)의 출발이 종교적 심성과 뗄 수 없다는 인식과도 밀접한데, 동서양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인간의 마음에 종교적인 것을 갈구하는 무의식적 원천이 내재하는 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종교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종교적 속성은 인간의 건전한 정신을 위한 불가결한 요소다. 인간 안에 있는 분화되지 않은 무의식의 원형과 그 에너지는 종교적인 힘을 가지고 인간을 이끌고 있다. 비동양권 국가들의 가치가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적 질서, 혹은 이슬람적 계율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도 그러한 이유다.

그러므로 멀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성스러운 것은 인류의 신화시대부터 전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존 전체에 나타난 종교적 가치이며, 이러한 성스러움을 신성현현(神聖顯現Hierophanie)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인류가 근대사회 이후에 그 모습을 감추려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엘리아데는 바로 이러한 성스러운 현상을, 현대사회로 대표되는 세속적 세계와 대비시켜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라는 가치로 부각시켰다. 중국 국학의 근본이 유교와 뗄 수가 없고 일본 국학의 토대가 그들의 신도(神道)와 별개가 아님도 이것과 유사한 것이다.

일본의 국학이 일본 신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넓은 의미로, 불교나 유교와 대결하면서 일본 고유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는 것이 일본의 국학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고도학(古道學)으로도 불리는 일본 국학은 신고(神道)로 귀결된다 하여 신도학(神道學)으로도 불렸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시가(詩歌) 연구와 고도(古道) 연구라는 두 가지 주제로 집약되었다. 본시 신도라는 말은 고대에 형성된 말이지만 일본의 국학이라는 말은 18세기 말에 등장하여, 19세기에 들어와 일반화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일본국학의 창시자로 지칭되는 게이추(契沖)는 물론, 뒤이어 등장하는 국학사대가(國學四大家)인 가다노 아즈마마로(荷田春滿),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국학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학문을 국학으로 부르기 보다는 화학(和學)고학(古學)고도학(古道學) 혹은 고도신학(古道神學)이라고 칭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한편 이들이 주창하는 고도, 즉 고신도란, 외래종교인 불교와 유교에 오염되기 이전의 순수한 일본의 고대정신(古代精神)과 동일한 것으로, 태고로부터 나라시대(奈良時代:710-784) 이전까지 성립 전개된 신도를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근대 국학 역시 고학(古學) 부흥을 제창했는데, 중국의 고학이란 유학(儒學)을 포함한 선진(先秦)의 제자학(諸子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무제 당시 동중서가 유교를 국학으로 세운 이후, 중국의 근대 국학에서도 종교철학적 속성을 강조했음을 주목하자는 것이다. 즉 근자에 중국 인민대학의 국학원 설립이 유학(儒學)을 중심으로 고전을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 것에서도, 현금 중국 국학의 뿌리도 유교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중국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일면서, 흔들리는 사회주의의 이념 문제를 중국의 전통 가치인 유교에서 찾아 세우려는 것이다. 몇년 전(20059월 초)에도 200명이 넘는 중국 지도자와 화교(華僑) 학자들이 모여 유학연구대토론회(儒學硏究大討論會)가 벌어졌다. 여기서 도출된 것이 유학에서 사회 충돌을 피하고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世界日報, 2005927일자) 즉 중국의 국학도 중국의 전통 종교인 유교의 토대 위에서 지속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3. 국학의 중심에는 단군이 있다

 

한국사상사의 초두를 장식하는 부분이 토착고신앙(土着古信仰)이며, 그 자체가 중요한 맥락을 이루면서 한국사 전반에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들어 온 불교와 유교 또한 토착고신앙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특히 고신앙 방면은 일제강점기 민족적 성향을 가진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이러한 배경에도 단군신앙의 영향이 컸다는 것도 주목된다. 이러한 면은 후일 단군신앙을 근대적으로 부활시킨 홍암 나철이 국학의 선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도 되는 것이다.

나철의 사상 속에는 국학적 요소인 국어국사국교철학민속수행 등이 두루 나타난다. 나철의 국학은 사상적 정체성과 시간적 연속성, 그리고 공간적 차별성과 보편적 개방성의 속성을 두루 갖춘 국학으로, 철이 회통되어 나타나는 국학이라는 점에서 순수 국학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이러한 가치가 우리 고유의 단군신앙의 중흥과 함께 성숙되었다는 것은, 나철 국학의 정신적 배경을 알게 해 주는 동시에, 근대 국학의 선각자라는 홍암의 위상을 확인시켜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의 국학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닫혀 있는 국학이 아니라 열린 국학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향후 세계화 시대의 국학연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국학을 통해 학문의 보편적 원리와 그 의의를 정립하고, 세계학문의 길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길을 모색해야 하며, 국학을 넘어서는 국학을 해야 세계를 향하는 길이 열린다는 주장에도 부합되는 가치다.

 

4. 31은 우리의 사유체계다

 

아마도 이와 같은 우리의 국학적 사유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천부경이나 삼일신고에 나타나는 질서가 아닐까 한다. 천부경은 우리 민족 진리의 존재태로써, 삼일신고의 주경(主經)이요 참전계경의 모전(母典)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 국학의 내적 속성을 옹글게 보여주는 동시에, 제학문에 대한 보편적 원리를 수리학적 질서로 제시하고 있다. 수학(數學)이 신의 창조적 질서와 연관된다는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천부경이야말로 수학개론에 해당하는 문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천부경은 우리 민족 정체성의 원리인 동시에 인류 홍익의 지침도 되기 때문이다. 그 속에 담긴 삼일철학(三一哲學)의 원리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으로 접근하면 문학의 열매가 열고, 철학으로 바라보면 철학의 지평이 열린다. 과학으로 해석하면 과학의 질서가 잡히고, 종교로 접근하면 종교의 원리가 보인다. 그것도 불교면 불교, 도교면 도교, 기독교면 기독교 모두 그 이치 안에서 어긋남이 없다. 진리는 극히 단순하면서 명쾌하다는 이치가 바로 천부경의 이치다. 다음의 내용도 이것과 다를 바 아니다.

 

천부경은 物理에 있어서는 求心 卽 遠心임을 일깨우는 變化無雙科學이요, 修行에 있어서는 外虛인 듯 內空聖力을 북돋우는 玄妙運氣秘方이며, 哲學에 있어서는 神理로써 人生을 꿰뚫는 天人貫通古典이요, 經典에 있어서는 天經으로써 俗經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唯一無二眞經이다.”

 

까닭에 천부경은 종교의 시작이요 끝인 동시에, 철학의 비롯이며 마무리다. 이 속에는 우리 민족의 하느님 관념을 넘어, 인류 보편의 신앙 관념이 호흡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하느님인 동시에 기독교의 여호와요 이슬람의 알라도 된다. 불교의 법()이 되는 동시에 유교의 천()이 되며 도교의 도()라고 해도 부딪힐 것이 없다. 우리 국학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천부경의 이치야말로, 우리 국학의 처음(민족적 정체성)이자 끝(인류홍익)을 암시하는 질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근대 단군신앙을 중흥시킨 나철이, 기독교의 여호와나 불교의 제석과 유교의 상제나 회교의 알라를 모두 하나의 하느님으로 설파한 것이나, 박은식 역시 단군의 역사 속에 석가와 예수, 공자와 마호메트의 가치가 배태되고 있음을 역설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5. 그래도 정체성은 죽지 않았다

 

아무튼 기존 국학연구의 업적이 전술한 바와 같이 삼국시대를 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이전의 시대로 국학의 자취를 재구(再構)해 감에 있어 사료의 빈곤과 재야사서의 문제에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조선조 세조의 수서령(收書令)으로 자취를 감춘 서책들인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表訓)삼성밀기(三聖密記)삼성기(三聖記-安含老元董仲)도증기(道證記)지리성모(智異聖母)하사량훈(河沙良訓)문태산옥거인업등삼인기록(文泰山王居仁業等三人記錄)수찬기고(修撰企所)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虱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만 보더라도 대부분이 우리 순수국학의 중요한 맥이 될 수 있는 신교사서(神敎史書)와 연관됨을 상기한다면, 우리 고신앙의 흐름이 험난한 역정 속에서도 우리 민족사의 줄기에 끊임없이 흘러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 민족의 민족적 특징이 고조선 원민족(선민족 proto-nation or pre-nation)부터 시작되고 있고, 한민족의 형성사는 고조선 원민족의 형성사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민족사회학적 분석이 주목된다.

민족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민족형성의 과정을 원민족(선민족 proto-nation or pre-naton)'전근대민족(pre-modern nation or traditional nation)' 그리고 근대민족(modern nation)' 나아가서는 신민족(neo-nation)'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원민족은 본질적으로 혈연공동체인 부족으로부터 본질적으로 문화공동체인 전근대민족(때로 지역에 따라서는 근대민족)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민족으로서, 기본적으로 정치군사언어문화신앙관습의 공통적 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공동체이며, 전근대민족은 시기적으로 전근대 시대에 일차적으로 언어문화혈연정치의 공동과 부차적으로 경제역사의 공동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즉자적 민족이다. 또한 근대민족은 시기적으로 근대에 일차적으로 언어지역문화정치경제역사의 공동 및 민족의식과 부차적으로 혈연의 공동을 기초하여 형성된 대자적 민족이며, 신민족은 부족이 지배하던 시기에 강대국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나라들 중, 식민지로부터 독립되어 새롭게 국가를 건설하고 그 국가의 주민이 속하는 모든 부족들과 원민족을 통합하여 새로이 민족형성의 작업을 진행하는 민족을 말한다. 이것을 토대로 인류사회의 민족형성과정을 다음과 같이 5가지 유형으로 제시할 수 있다.

1 유형: 부족 ()민족 전근대민족 근대민족

2 유형: 부족 ()민족 근대민족

3 유형: 부족 이주민 근대민족

4 유형: 이주민 근대민족

5 유형: 부족 ()민족 신민족

 

즉 민족국가의 형성은 그것을 지탱하는 정신적인 요소가 이미 확립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원민족에 나타나는 군사공동체의 특징은 지배지역과 지역주민을 끊임없는 정복에 의하여 확대해 가려는 강렬한 운동을 촉발시켜 꾸준히

민족형성으로 팽창해 가는 동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6. 이것이 국학의 실체다

 

우리 민족도 단군 시대부터 종교와 군대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음은 일찍이 최남선에 의해서 제기되었는데, 그 개연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여하간 (神人, 上古에는 그대로 君長) 있는 곳이 이요, 에는 師衆 -聖地威力的 表現이 되는 團體, 壇君神典으로 말하면 徒三千같은 것- 聖衆이 있어 이것이 他日 軍隊淵源을 지으니, 後世까지도 라 함에는 실상 이러한 古義가 들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上古巫君으론 生民模範이요, 으론 敎師, 將帥, 三者兼攝表現하여 元首를 얻은 것인데, 이러한 狀態 又 人格單一的 名稱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군사공동체의 특징은 신채호의 주장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신채호는 신라의 화랑이, 단군시대의 무사도에서 출발하여 고구려를 거쳐 신라의 정신으로 연결된 것임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花郞別名國仙이라 하며 仙郞이라 하고, 高句麗 皂衣別名仙人이라 하여, 三國遺事花郞神仙之事라 하였은 즉, 新羅花郞은 곧 高句麗皂衣에서 나온 , 高句麗史平壤者 仙人王儉之宅은 곧 仙史本文이니 壇君이 곧 仙人始祖, 仙人은 곧 우리의 國敎이며 우리의 武士道이며 우리 民族의 넋이며 우리 國史의 꽃이거늘.”

 

그는 단군시대의 선인을 국교(國敎)이며 민족사의 정화(精華)로 보고, 이것을 계승한 화랑을 종교의 혼()이요 국수(國粹)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까닭에 그는 중국문화가 발호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중국화하려던 시기에도 조선을 조선답게 지켜온 것이 화랑이라고 극찬했다.

한편 신채호가 단군시대의 이러한 정신을 국학(國學)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이 주목된다. ,

 

夫餘馬韓 等 十餘國의 이름을, 沿革을 찾으면 다 壇君 때부터 있던 稱號. 後世國學이 끊어져 그 根源을 찾지 않고 다만 그 자취를 따라 이 이름은 이 때에 나고, 저 이름은 저 때에 났다고 해 왔다.”

 

라는 기록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사담체(史談體) 소설인 꿈하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단군시대로부터 흘러오는 신교적(神敎的) 인물들을 열거함에 있어, 굳은 신앙을 보여 준 동명성제명림답부, 밝은 치제(治制)를 행한 초고대왕(백제)선왕(발해), 높은 이상을 펼친 진흥대왕설원랑, 역사에 밝았던 신지선인이문진고흥정지상, 국문에 힘을 쏟았던 세종대왕설총주시경, 육군(陸軍)에 능했던 태조(발해)연개소문을지문덕 등을 열거하면서,

 

國學에는 비록 도움이 없지만 일방의 교문에 통달하여 朝鮮의 빛을 보탠 佛學元曉義湘, 儒學晦齋退溪.”

 

라고 서술함을 볼 때, 국학(國學)과 불학유학을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또한 그가 양학(洋學)에 대비하여 사용한 국학의 의미도 무엇이었는가가 분명해진다. 그리고 신채호에 있어서의 국학과 국수(國粹)의 의미가 서로 상통하는 용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일찍이 국수의 정신을, 그 나라에 역사적으로 전래하는 풍습관습법률제도 등의 정신이라고 주창한 바 있는데, 이 국수정신의 출발을 단군에 접맥시킨 것이다.

한편 박은식도 국학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다. 다만 그는 국학을 국교(國敎)국어(國語)국문(國文)국사(國史)와 함께 국혼(國魂)의 하위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는 국혼과 국백(國魄)을 대비시키면서, 나라의 멸망은 국혼과 국백이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나라의 근본인이 되는 국혼은 쉽게 소멸하지 않는 속성을 가짐으로, 국혼을 굳건히 하면 국백이 일어나 광복이 될 것으로 확신한 것이다. 그러나 박은식이 국혼의 하위 개념으로 설정한 국학이라는 말은 다른 하위 개념(국교국어국문국사)에 비해 그 의미가 모호하고, 박은식 또한 국혼의 하위 개념으로서의 국학에 대해 뚜렷한 의미 규정이 없다. 다만 논리적 접근을 통해 정리해 보면 다음의 유추가 가능하다. 즉 동위 개념의 설정에 있어 의미의 상호배타성을 고려한다면, 국어국문국사와는 다른 가치로써 국교와 중복되지 않는 철학사상 혹은 풍속을 의미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까닭에 신채호의 국학과 상통하는 박은식의 개념 용어는 국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이것은 신채호의 국학과 박은식의 국혼이 문()()()을 토대로 한 우리 고유의 정신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채호가 단군의 선교(仙敎)를 중국의 선교가 아니라고 밝히면서, 단군선교에 대한 무지(無知)와 그 종교의 침체를, ‘국수(國粹)의 무너짐이라고 한탄함을 볼 때, 신채호의 국수 혹은 국학이 단군신앙에 연결되는 것임이 확인된다. 또한 박은식도 단군신앙을 부흥시킨 신교를 우리 민족의 삼신을 믿는 최고(最古)의 종교로 보고 그 신조(信條)가 족성(族性)과 국성(國性)을 보지(保持)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그에 있어서 국혼(國魂)의 토대가 단군신앙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체계는 최남선의 부루교()’신도(神道)’, 정인보의 조선얼그리고 안재홍의 이나 태백진교(太伯眞敎)’, 안확의 종사상(倧思想)’과 이능화의 신교(神敎)’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안호상은 전래 단군신앙 속에서 형성된 역사와 철학을 국학이라는 명칭으로 개념화시키기도 했다. 따라서 순수국학의 본체 혹은 사유범위를 우리의 단군신앙(神敎 혹은 仙敎)과 연관된 문철로 테두리 짓는 것이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국학적 요소들이 보편성을 내포할 수 있는가가 문제될 수 있지만, 이들의 국학적 사유에 원동력이 되었던 나철의 개방성을 본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우리의 국학의 범위와 연관하여, 배달글(한글)을 국어로 하는 우리의 사회가 언중(言衆)과 민족 그리고 국민이 일치되는 집단으로써 지구상에 보기 드문 언어사회라는 점을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의 인멸 속에서 유교사관과 불교사관이 대신해 온 한국사학사에, 근대민족사관의 틀을 제공한 것이 신교사관(神敎史觀)이라는 것을 더욱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더욱이 한국의 불교사상이 인도철학의 연장 위에서 성립하고 우리의 유교사상 또한 중국철학의 기반 위에서 의미를 가짐을 볼 때,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한국철학(한철학삼일철학)이 단군사상의 기반 위에서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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