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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성 일 2013-06-19 15:29:33 조 회 수 1107
제 목 희산 김승학의 생애와 사상
내 용

희산 김승학(1881-1964)의 생애와 사상

 

                                               김병기(대한독립사편찬위원장)

 

1. 출생과 학업

1) 가계

2) 학업

3) 구국운동과 교육운동

 

2. 제1차 만주에서의 활동

1) 망명과 중국 봉천성 講武堂 수학

2) 在滿 義兵團 활동

3) 大韓獨立團 결성

4) 임시정부 聯通制 조직

5) 만주 단체 통합운동

 

3. 제1차 상해행

1) 光復軍司令部 결성

2) 무기 구입과 독립군 무장

 

4. 제2차 상해행

1) <獨立新聞> 복간

2) 세계혁명단체대표자대회(遠東革命者大會) 참가

3) 韓中互助社 활동

4) 대한민국임시정부 臨時議政院 평안도 대의원

5) 임시정부 學務總長 대리

 

5. 제2차 만주에서의 활동

1)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 취임

2) 3부(참의·정의·신민부) 통합운동

6. 收監生活 (1929년 11월 말 체포 ~ 1935년 4월 12일 出監)

 

7. 북경에서 秘密機關 활동

 

8. 해방과 국내 활동

1) 광복군 국내 第2支隊 지대장

2) <독립신문> 續刊

3) 환국 임시정부 활동 (비상국민회의 대의원/ 국무위원(정치부장)/ 한독당 감찰위원장

4) 기타 활동 (성균관 재단이사회 평의원/ 대종교 총본사 典理 등)

5) 『한국독립사』집필 활동

 

희산 김승학의 말과 글

 

 

1. 羅鮮國을 찾아서

 

듣건대 羅鮮國은

새로 別天地를 열었다 한다

부질없이 설득해 볼 생각으로

지금 압록강을 건너노라

王木蘭 韓秉華 두 사람은

알지 못하노라 어떤 인물인지

왜적이 우리나라를 덤벼드니

선비들이 붓을 던지고 무기를 잡을 때로다

 

2. 광복군사령부 무기수여식에서

 

우리 광복군사령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에 직속한 군단이며, 임시정부 군무부를 대표하여 우리의 원수 왜적과 혈전하는 기관이다. 제군에게 주는 무기는 국내의 동포들이 피와 땀을 모아서 마련한 것이며, 내가 몇 번이나 위험한 경우를 무릅쓰고 다니면서 모집하였고, 4천리되는 상해를 往返하면서 水陸 兩路로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구입한 것이다.

내가 去年 7월에 대한독립단 도총재부 소재지인 유하현 삼원포 대화사에 갔을 때 청년들이 집단 훈련하는 것을 보았는데, 무기라고는 舊 러시아식 장총 2정과 화승총 2정이 있을 뿐이요 그 외는 전부가 목총을 메었기로 나는 그 때에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금번에 국내에 출장하였다가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면 제군들이 휴대할 만한 무기를 마련하려는 결심이니 제군은 무기 없는 것을 落心하지 말고 훈련만 잘 받으라’고 勸勉한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길에 다행하게도 무기 자금이 마련되어서 지난 봄 황해도에 출장하는 군인에게도 다소의 무기를 주었고, 이번에 제군에 무기를 수여하게 된 것이다.

이 무기는 국내 동포들이 주는 것이며, 임시정부 군무부에서 주는 것이니, 제군들은 그렇게 알고 무기를 생명과 같이 사랑하여 한 발의 탄환이라도 헛되게 쓰지 말고, 一彈에 왜적 1명씩 잡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3. 체포되어 압록강을 건너며

 

나라를 버리고 집을 떠난 지 이십여 년 만에

죄인 싣는 수레로 돌아오며 고향 하늘을 보노라

愁心 구름은 내 집이 있는 馬頭山 아래 아득하게 덮였을 것이요

호걸스런 기운은 잠깐 동안 내가 갇히는 압록강 감옥에 잠길 것이라

무기를 많이 사 들였으니 의병들의 형세를 격동시켰고

곧은 붓을 들었으니 사대주의 잠꼬대를 경계하여 깨웠도다

上林 동산 어느 날에 까마귀 머리 희어져서

節鉞을 가지고 돌아오는 韓나라 조정에 나라 위세를 펼쳐볼까

 

4. 獄中 感想

 

내가 나고 내간 자란 것이 본래 빈한하고 미약하였으니

어머님은 베 짜시고 아버님은 밭 갈으시고 아내는 고사리를 캐었네

평생에 집 살림살이 일삼지 않았으니 가난하기 물에 싯은 듯 하고

衰하는 것이 머리털을 침노하니 귀밑털이 희기가 눈과 같더라

내 손으로 심어놓은 괴화나무는 가시덤불을 이루었고

先世부터 전하여 오는 齋室은 섶으로 만든 문짝이 헤어졌더라

사람들아 내가 이루어 놓은 것 없다고 비웃지 마라

천천히 公論을 기다려 잘잘못이 定하여 지리라

 

어제 난 아이 같은데 오십 년을 지냈구나

세상 물정을 늦게야 깨달았으니 지금에야 하늘 이치를 알았더라

여섯 자 되는 몸은 비록 죄 없이 옥에 갇혀있으나

한치만한 마음은 항상 독립운동하던 곳에 있도다

일을 좋아하여 여기저기 참견하니 세 나라 獄을 모두 갇혀 보았고

공로 없이 외람되이 두 나라 은혜를 입었더라

집을 잃어버리고 나라가 망한 것이 무슨 緣故였던가

모두가 다 우리가 事大하는 잠을 깨닫지 못한 탓이라

 

5. 『한국독립사』自序 중에서

 

내 일찍 조국 광복을 위한 운동 대열에 참여하여 상해에서 <獨立新聞>을 주관할 때 백암 박은식 동지가 편저한 『한국통사』라는 ‘나라를 잃은 눈물의 기록’과 『한국독립운동지혈사』라는 ‘나라를 찾으려는 피의 기록’을 간행할 때 그 사료 모집에 미력이나마 협조하면서 次回는 『한국독립사』라는 ‘나라를 찾은 웃음의 역사를 편찬하고자 굳은 맹약을 하였었다.

그로부터 다년간 그 참담한 투쟁을 통하여 사료가 작성 되는대로 당시 包頭에 寓居하시던 趙秉準 선생께 보관시키고 불행히 倭警에게 被捕 後 手脚이 골절되는 수 십차 惡刑이 주로 이 史料 搜索 때문이었다. 출옥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 모처에 移置하였다가 일제 항복 후 이 사료를 사십년 이래 나의 血汗의 結晶으로 삼아 귀국하였다. 붓이 이에 이르매 白巖 同志의 추억이 새로워 눈물이 지면을 적신다.

슬프다 ! 事未半成에 宿病이 沈重하여 他世할 시점에 임한 듯하다. 내 사랑하는 손자 繼業아, 이 할아버지의 미진한 뜻을 肝肺에 깊이 새겨 勉之 誠之하여 계승하라.

 

무릇 한 국가를 창건하거나 중흥시키면 施政 최초로 유공자에게 厚重한 논공행상을 하고 반역자를 엄격히 依法治罪아는 것은 후세 자손으로 하여금 유공자의 그 爲國忠誠을 본받게 하고 반역자의 그 죄과와 末路를 경계케 하여 국가 주권을 길이 만년 반석 위에 놓고자 함이다. 이 중요한 정치철학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반세기 동안 國破民賤의 뼈저린 수난 중 광복되어 건국 이래 이 국가 백년대계의 원칙을 소홀히 한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일제의 走狗로 독립운동자를 박해하던 민족반역자를 重用하는 愚擧를 범한 것은 광복운동에 헌신하였던 항일투사의 한 사람으로서 前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시정 중 가장 큰 과오이니 후일 지하에 돌아가 수많은 선배와 동지들을 무슨 面目으로 대할까 보냐.

이 중대한 失政으로 말미암아 이 박사는 執政 십 년 동안 많은 항일투사의 울분과 애국지사의 비난의 的이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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